땅거미 내릴 무렵
김광규
짙푸른 여름 숲이 깊어갑니다
텃새들의 저녁 인사도 뜸해지고
골목의 가로등 하나 둘 켜질 때
모기들 날아드는 마당 한구석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밀려오는 어둠에 잠깁니다
어둠이 스며들며 조금씩
온몸으로 퍼져가는 아픔과 회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지긋이 견딥니다 남은 생애를
헤아리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몫이려니 나의 육신이
누리는 마지막 행복이려니
그저 이렇게 미루어 짐작하고
땅거미 내릴 무렵
마당 한구석에 나를 앉혀 둡니다
차츰 환해지는 어둠 속에서
한 점 검은 물체로 내가
멀어져 갈 때까지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2007. 30.
-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마당 한구석에 앉아 짙어가는 노년을 성찰하는 시. '환해지는 어둠 속'이라는 시구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 노년과 죽음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면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결의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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