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돌보기
김광규
어려운 세월 악착같이 견뎌내며
여지껏 살아남아 병약해진 몸에
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었겠지요
하지만 역겨운 냄새 풍긴다고
귀여운 아들딸들이 코를 막고
눈을 돌릴 수 있나요
척박했던 그 시절의 흑백
사진들 불태워버린다고
지난날이 사라지나요
그 고단한 어버이의 몸을 뚫고 태어나
지금은 디지털 지능 시대 빛의 속도를
누리는 자손들이 스스로 올라서 있는
나무가 병들어 말라죽는다고
그 밑동을 잘라버릴 수 있나요
맨손으로 벽을 타고 기어들어와
여태까지 함께 살아온
방바닥을 뚫고 마침내 땅속으로
돌아가려는 못생긴 뿌리의 고집을
치매 걸렸다고 짜증내면서
구박할 수 있나요
뽑아버릴 수 있나요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100-101.
-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이 치매라는 용어는 너무 지독하다. 대체할 마땅한 용어가 뭔지를 몰라 계속 쓰고 있는데, 일본에서 쓰고 있는 '인지증' 정도도 괜찮을 듯하다. 엄마가 이 인지증을 앓은지 5년이 넘어간다. 회복의 가능성은 없고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병, 인지증 외에도 악화되는 엄마의 상태 하나하나가 크고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현재는 소강상태이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 김광규의 호소는 당연하면서도 직접 당면해야 하는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나도 또한 '기저귀를 갈면서'라는 시에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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