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안개를 뚫고
또 다시 네 앞에 섰다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건만
마치지 못한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협곡을 집어 삼킬 듯
뜨거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허공을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네가 건네는 말을 들으려
귀를 세워 보지만
넌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데
하지만 귀가 어두운 것인가
너처럼 벼랑 끝에 날 세워야 하는가
차분히 건네는 너의 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한다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금시라도 누구를 베어버릴 듯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내 정신의 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