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번지점프

by 길철현 2024. 11. 19.

 
죽고 싶다고
그냥 막 죽어버릴 순 없는 노릇이라
죽음의 뒷그림자나 보려
번지점프에 도전했지요
 
두려움이 감당을 넘어선 걸까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엘리베이터는 한없이 올라가고
마침내 점프대 끝에 섰을 때에도
마음은 오히려 평소보다 평온했지요
뒷그림자나마 죽음과 대면한다는 기대에 
약간의 흥분감마저
 
카운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부터 바닥을 향하고
바닥과 충돌하여 납작만두가 되기 전
그 무한히 짧은 순간
 
내 거친 몸부림도 무소용
날개가 있든 없든 추락은 불가역
한 개 돌멩이에 뒤지지 않는 무능함
 
이 모든 것이 뼛속에 새겨질 때
거짓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해방이
 
천천히 고개 들어 주위를 볼 때
널브러져 죽어버린 죽음이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을 떠나며  (1) 2024.11.22
꽃의 독백  (0) 2024.11.22
재인폭포에서 -- 재인의 최후  (0) 2024.11.19
번지점프  (0) 2024.11.18
저수지 썰  (0)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