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278 병신

by 길철현 2024. 12. 26.

서기 이천십사 년

(단기로는 사천삼백사십칠 년

우주력 이백삼십칠억 오천사백삼십구만 이천칠십육 년)

삼월 이십삼일

세시 삼십구 분 오 초 삼삼

순간 혹은 찰나는 쨉도 안 되는 순간에

278은 드디어,

오매불망 평생을 두고 찾아 헤매던

하느님을 만나고 말았는데

(우리말로 하느님을 거꾸로 읽으면 님느하이지만

영어로는 개라고 하던데)

그 느낌을 감히 필설로 표현해 보자면

일찍이 아우아홉스티누스 대제가 말한 것처럼

영원히 현재에 거하는

항상 같으신 분,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언어의 끝,

그러니까 언어의 안과 밖의 극점을 지나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을 지난 다음에

빛이며 어둠이고

사랑이고 증오이며

애인이자 원수,

신인 동시에 악마,

이런 모든 상반된 것의 결합인 동시에 해체,

한마디로 말해 좆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뭣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좋나쁘진 않다는 것이었으니

278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 신음을 내질러

악아악아악아아악아그라자악아개시발악아아아앙악

혼곤히 잠든 아파트 주민을 모두 깨웠도다

하느님을 친견한 자가 흔히 그러하듯

278은 눈멀고

귀멀고

좆멀어

손발을 부들부들 떨며

용서할 것이다, 용서받을 것이다,

나의 죄는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나는 사만이천사백 번을 죽었던 몸이다

복수는 나의 몫

뜻 모를 말을 씨부리다가

다시 한번 고꾸라져

어린아이의 미소를 물고 자는데

그 위를 떠다니는 개소리, 잡소리, 좆 같은 소리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 고흐 형제  (2) 2024.12.26
278 구골 쓰기  (0) 2024.12.24
폭포에서  (0) 2024.12.24
재인폭포에서 -- 재인의 말  (1) 2024.12.23
  (0) 20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