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가 좀 더 있다면 멀리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지만, 어머니 간병 때문에 현재는 시간적 제약이 많다. 그다음 또 하나 해보고 싶은 것은 희귀본을 구입하는 것이다. 종이 책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긴 하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귀해진 책들의 가치는 앞으로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여유가 별로 많지 않은 가운데 그 첫걸음으로 젊은 시절 좋아하던 박재삼 시인의 첫 시집 <춘향이 마음>(1962, 신구문화사)을 거금 32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책의 정가가 백 원이니 3천 2백 배 올랐다. 당시 100원은 꽤 큰 돈으로 한 끼 식사 비용이 10원, 버스와 전철도 10~15원, 영화도 20~30원 정도였다). 몇 달 전 인터넷에 30만 원에 올라와 있어서 구입을 시도했으나, 판매자로부터 이미 팔렸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다른 판매자들은 50만 원 이상에 내놓아 마음을 접고 있다가, 좀 싼 가격에 나온 것이 있어서 지르고 말았다.
서정주의 계보를 잇는 박재삼 시인이 왜 내 마음에 특히 와닿았는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시인이 겪어야 했던 가난이나 애틋함의 정서를 잘 담아내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의 넓지 않은 이마가 나와 동일시되는 면이 있기 때문인지도.
25년 전, 일주일 간의 남부 지방과 제주도 여행 때, 나는 당시 시인이 거주하던 삼천포(현재는 사천 시로 개편)에 들러 우연한 만남을 꿈꾸기도 했다. 다시 시간을 내서 그의 시를 찬찬히 읽을 기회가 있을까? 그건 못하더라도 봄이 오면 2008년에 개관한 사천의 박재삼 문학관에라도 한 번 들러야겠다. 시가 한 편 나올 듯도 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이 시집에 실린 '울음이 타는 가을강' (44-45)을 옮겨 적어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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