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란 대체로 불현듯 찾아온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사태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거기다 일주일에 3번 요가 학원에 가서 1시간 20분씩 트레이닝을 받으니, 탁구를 좀 많이 쳐도 몸이 버텨줄 줄 알았다. 그렇긴 해도 리그 전 본선 1회전에 탈락했다고, 당일에 리그 전을 한 번 더 뛰고(1월 24일), 들끓는 화를 가라앉히려 이틀 뒤 여수 여행 때 동행도 배신하고 혼자 '금오도 비렁길'을 8시간 가까이 걷고(막배를 놓치지 않으려 마지막 20분은 산길을 뛰어내려왔다), 거기다 여수에 온 기념으로 탁구도 두 게임 얹고(1월 26일), 몸은 이미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책 정리 한다고 박스에다 책을 담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월세를 얻은 '책방'으로 한 달 동안이나 나른 것도.
결국 지난 월요일(2월 3일) 잘 버텨주던 허리가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번 요통은 처음에는 허리가 좀 안 좋다는 미묘한 신호로 찾아왔다. 10대 후반부터 시달려온 요통이라 나도 기민하게 대응을 했다. 파스를 붙이고, 하던 시합만 끝내고(당시 탁구를 치고 있었는데),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찜질과 전기치료, 거기다 간단한 무료 도수치료까지 받고 나니 약간 뻣뻣해졌던 허리가 부드러워지면서 무사히 넘어갈 것도 같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마시지까지 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어나 팔을 위로 뻗었다가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몸을 풀었는데, 팔이 이전만큼 내려가지 않아 약간 무리를 하는 순간, 허리로 전기가 지나간 듯 찌리릿하더니, 심한 근육 뭉침 현상이 일어났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 하나. 25년 전쯤의 어느 날 저녁 무렵, 당시 살던 서울의 아파트 현관에서 극심한 통증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는데, 정말이지 허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사달이 난 줄 알았다(아마도 이 당시에도 무리를 했던 듯하다). 한참을 그대로 엎드려 있다가 (119를 부를까 망설이다) 거의 기다시피 하며 겨우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의사의 진단은 단순 근육통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겪은 격심한 고통과 의사의 진단 간의 간극이 아무리 해도 메워지지 않아 계속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근육이 뭉쳐져서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증상이 되풀이되었고, 주사와 약, 걷기와 스트레칭 등의 회복 훈련이 뒤따랐다. (처음에는 성급하게 근육을 풀어주려 했는데, "근육이 화가 났을 때는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최고"라는 물리치료사의 말이 정답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부하로 인한 근육통의 경우 휴식과 시간이 최고의 약인 셈이었다.)
작년 6월에는 또다시 찾아온 무기력증으로 나를 버티게 해 주던 탁구마저 놓아버리고 유튜브 시청과 바둑으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고 지나치게 오래 앉아 있은 탓에 요통이 급습했다.
통증과 씨름하며 회복되기를 기다리면 될 정도였는데, 동생이 패키지로 예약해 둔 장가계 여행이 코 앞이었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지인이 효과를 보았다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통증의학과였다. 그리고 맞은 스테로이드 성분의 주사. 다음 날 아침, 근육 뭉침 현상으로 한쪽으로 기울었던 몸이 균형을 잡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많이 걸어야 했던 4박 5일간의 장가계 여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 번 효과를 맞보았기에 심하면 몇 개월을 운동도 못하고 시달리는 쪽보다는 이번에도 스테로이드 성분의 주사를 맞는 쪽을 택했다. 부작용을 염려한 탁구장의 누군가는 "내일을 사서(buy) 오늘을 사는(live) 것"이라는 절묘한 비유를 하기도 했지만, 갈급한 것은 아무래도 오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원 측에서 부작용으로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특히 강조했다.
지난번에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기에 가볍게 웃어넘겼는데 투여량이 많았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근육 뭉침 현상이 몇 번 발생했으나 주사약으로 마비가 된 것인지 통증은 거의 없었다. 대신에 속이 메슥거리는 것이 컴퓨터 앞에 앉거나 책을 읽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저녁 무렵에 이 증상이 특히 심했는데 다행히도 누우면 그래도 좀 괜찮았고 곧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고비는 금요일(7일) 지인 분 아버님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였다. 저녁 무렵 아는 분과 동행했는데 내 차로 갔다. 갈 때부터 속이 다소 심하게 메슥거리더니 장례식장에서 문상을 마치고 식사를 할 때에는 메슥거림이 참기 힘든 정도였다. 양해를 구하고 일찍 일어나 차로 와서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있으니 다소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출발을 했는데, 운전을 하니까 또 메슥거렸고 헛구역질까지 났다. 정신을 잃거나 하는 아찔한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몸을 감쌌고, 그 와중에도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지인은 술을 몇 잔 마신 상태라 교대할 수도 없었다). 지구 종말에 대한 그 며칠 전의 꿈(1일)이 이 사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집에 도착을 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처방전에 어지럼증에 대한 약도 들어있었다고 했다(어지럼증에 대한 약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대체로 일반 진통제에 지나지 않았다). 주사를 맞으면 통증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약 처방을 받지 않았는데, 약을 먹었더라면 어지럼증도 피할 수도 있었으리라(나의 경우 주사약이 신경계에 압박을 주어서 그렇다고). 다시 3일 치 약 처방을 받아 복용을 했더니 미세한 증상을 빼고는 개선이 되었다. 그리고 의사는 카페인 섭취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참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니, 일?은 내려놓고 조금은 가볍게 탁구를 치고, 적당히 걷고, 또 허리 근육 이완에 도움이 되는 거꾸리도 자주 하고.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자제해 왔던 커피를 많이 마시기로 했다(짧아진 소변줄에 이뇨 성분이 있는 커피를 자꾸 마시면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가는 명약관화하지만 의사의 처방이니).
그래도 며칠이 지나 이만큼이나 글을 쓸 수 있게 된 걸 보면 허리가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인생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씨름하며 나아가는 것이라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다시 한번 소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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