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한 분이 정신분석적 상담(치료)을 '철 지난 헛소리'라고 한 것이 나에게 다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0대 이후 내 삶에서 프로이트는 이 세상을 파악하는 하나의 큰 기준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배님의 말이 타당한가 아닌가를 떠나, 프로이트가 브로이어와 함께 발표한 <히스테리 연구>(1895)를 정신분석의 출발로 볼 때, 당시 인간 정신에 대한 첨단 학문이었던 정신분석이 130년이 지난 현재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는 건, 그 동안에 여타 다른 과학과 함께 뇌과학 분야도 엄청난 발달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는 1980년대에 유행했던 '안구 운동'이다. '안구를 움직이는 운동을 하면 눈이 좋아진다'는 이론에 따라 학원들이 여럿 생겼고, 나도 두세 달 학원을 다녔던 일이다. 하지만 그 주장은 실질적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몇 년 뒤에는 학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분석이 AI로 대변되는 21세기 첨단 과학의 발달에 따라 그 위치를 잃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다.
이 짧은 글에서 그를 옹호하거나 아니면 그의 이론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논할 수는 없고(그럴 역량도 되지 않지만), 다만 어제 내가 꾸었던 꿈의 사례로 몇 가지 시사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꿈에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있었다. 김치규(김종길) 교수님의 강의인 것으로 보아 나는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인 모양이다. 교수님은 학생을 불러 영어 교재 해석을 시켰는데, 내가 호명되었다. 그 교재는 내가 예전에 읽은 것도 같았고, 또 영어 실력도 그 동안 늘어서(이 생각에는 육십이 된 내가 개입) 무난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긴 해도 여러 일로 바빠서인지 예습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분명 큰 부담이었고, 그 때문이었을까? 내 교재는 페이지가 뒤죽박죽이었다. 한 마디로 교재 자체가 파본이었다. 20페이지 바로 다음에 150페이지가 나오고 또 앞으로 돌아가고 하는 식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숨 죽이며 기다리고(이건 내가 약간 첨가하는 느낌도 있다) 나는 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맞는 페이지를 찾으려 기를 썼다(김치규 교수님은 깐깐하기로 이름이 높은 분이었다). 2백7십 몇 페이지인가? 어떻게 겨우 맞는 페이지를 찾아 읽으며 해석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큰 야단을 맞겠구나 하고 있는데, 어찌된 셈인지 교수님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나 대신에 읽고 해석을 해주었다. 교수님이 뭘 잘못 먹었나? 아, 내가 얼마 전에 낸 시집을 교수님께 증정했기 때문에 같은 시인이라 이렇게 너그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내가 적은 이 꿈의 내용은 꿈 자체와 그 뒤의 의식적인 첨가나 수정이 가해진 복합물이다. 그렇긴 해도 이 꿈을 통해 나는 내 마음의 움직임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에 나는 친구와 함께 소쉬르 스터디를 하기로 했고,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읽기 전에 입문서로 조너선 컬러의 <소쉬르>를 먼저 다루기로 했다. 스터디를 제안한 내가 발제를 맡기로 했는데(스터디 인원은 4명으로 늘었다) 첫 시집을 발간하고 책 판매를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첫 모임의 일정을 열흘 정도 늦춰야 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영어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하며 요약 정리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꿈은 그러니까 요즈음의 내 상황을 약간 바꿔서 보여주고 있다. 이 꿈에서는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꿈의 소재는 대체로 꿈을 꾸기 하루나 이틀 전에 있었던 상황에서 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꿈의 후반부는 해석이 쉽지는 않은데, 30년 전 대학원 첫 발표에서 나는 김치규 교수님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고,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나는 대학원을 떠나고 말았던 것과 연관이 되는 듯하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석사 학위를 획득했고 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박사 과정 때 김치규 교수님의 후임으로 온 교수님(김치규 교수님의 직속 제자인)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 때는 나이도 있고 해서 오히려 칭찬을 많이 받았다. 김치규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이 교수님도 시 전공이어서, 나는 내 시집을 보내드렸는데, 교수님으로부터 격려의 말을 들었다. 꿈에서 벌써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김치규 교수님에게 시집을 증정한 것으로 나오는 것은 두 교수님을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이 꿈은 내가 보기에는 젊은 시절 나의 열등감과 그로 인해 입어야 했던 상처를 그 이후의 상황과 시집을 발간한 것 등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인 듯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의 해석이 터무니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지 않다. 그리고, 어제 꿈이 사례로서 좋은 예도 아닌 듯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무의식이라고 못 박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의 깊은 부분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정신분석이 여전히 유효하고, 정신분석적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기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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