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념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한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선택이나 결단의 근저에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인간 존재가 유전과 환경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거의 대부분 결정된다고 한다면,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고창수 선배의 글에 대한 답글)
일단 어려운 라캉은 논외로 하고, 프로이트 이야기를 좀더 해보도록 하지요. 프로이트가 위대한 사상가이긴 하지만, 그 역시도 19세기 말의 '결정론적 과학 이론' 아래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요. 바꿔 말해 양자역학이 나와서 과학의 역사가 180도 바뀌는 것을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거지요. 그 때문에 선배님이 말한 환원주의의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정신분석도 과학의 발달에 발맞춰 변해온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것을 떠나, 정신분석 수업을 2년(나중에 온라인으로 프로이트 읽기 수업 1년) 받고, 실제 정신분석적 상담(치료)을 7년 정도 받은 것과, 코로나 시절 범불안증(우울증도 포함)으로 수면제와 약물 치료를 받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몇 마디 하고 싶네요.
먼저 정신분석적 상담(치료)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치료 효과를 확신할 수 없다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약물 요법은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지요. 최상의 경우에는 약물이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까지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는 잘 아시다 시피 약물 복용에 따른 부작용과 의존증의 증가(중독),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약물이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내 마음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큰 기대와, 우울과 불안, 그리고 무력감 등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등을 안고 치료에 임했는데, 1년 정도 받은 다음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된 듯해서 종료를 했다가 몇 달 뒤에 다시 치료를 재개했지요. 치료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어려우나, 뭔가 알 것 같다는 기대와 막연함, 답답함의 되풀이였습니다.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어렵긴 하지만 피하지 않고 나와 대면하려는 시도를 실패하면서도 반복'해야 한다는 정도입니다. 저의 생각을 지켜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는 상대 앞에서요.
꿈은 우리의 심층의식(혹은 무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치료자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부분이지요. 또 꿈을 잘 분석하면 제 마음의 움직임을 더 잘 알 수 있고요.
어쨌거나 저는 무의식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얼핏 선 잠이 들었을 때에도 뇌가 돌아가면서 뭔가 언어 작용(정확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을 하는 것을 느꼈을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걸 인지하는 것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고창수 선배의 글)
한 후배의 담벼락에 정신분석은 철 지난 헛소리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과격한 말을 하고 싶진 않았는데, 라캉이라는 철 지난 정신분석학자가 소쉬르의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관계를 오독한 것, 그리고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게다가 그의 이론에 근거한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여파가 있었다.
철 지난 헛소리라는 정신분석 앞에 (프로이트 식의) (라캉 식의)라는 수식어가 있어야 했는데.
그들의 정신 분석이 철지났다는 말은 그것이 순전히 환원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란 전체의 부분을 조합하면 전체가 된다는 사고 방식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복잡계로서의 세계에서 환원주의가 발을 디딜 틈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얼마 전 삼체라는 영화 혹은 소설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중력이라는 그 간단한 힘은 두 개의 물체가 있을 때 계산 가능하다. 물체가 하나 더 개입해도 그들 사이의 중력을 방정식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물체들이 존재하는가?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정신은 두뇌의 활동이고, 두뇌에는 엄청난 수의 뇌세포와 그보다 몇 배 많은 뉴런들이 있다. 그들을 쉽게 말하면 그냥 엄청나게 복잡한 배선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몇 개가 연합하여 정보를 산출하면 그것은 하나의 회로로 성장한다. 그 회로들의 수도 엄청나다. 실제로 계산 가능한 큰 수이긴 하지만 문돌이답게 그냥 엄청난 수라고 하자. 그 회로들은 분명 특정 뉴런의 연결이지만, 그 연결도 그냥 간단한 연결이 아니다. 어떤 부분의 배선이 끊겨도 다른 뉴런으로 재생되는 말하자면 물질적인 연결들이 비물질적 연결로 환치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인 것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어떤 무의식이 있고 그 무의식을 결정하는 어떤 경험 혹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반드시 가져야 하는 특정한 어떤 상징이라는 것이 지배한다는 식은 매우 유치할 정도의 환원주의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 식의 혹은 라캉 식의 정신분석은 철 지난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약을 먹어서 우울증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거나 촉진시키면 된다. 정신분석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보다 약이 훨씬 빠르다. 마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의 비유가 적당할지 모른다. 물론 상담은 무척 중요하다. 약 자체에 의존하는 것보다 상담과 병행하면 약의 오남용을 줄일 수 있고 우울증도 보다 완화할 수 있다. 의사들의 처방은 간단하다. 자꾸 약에 의존하지 말고 햇빛을 많이 쐬고 운동하라고.
그들은 나의 꿈에 별 관심이 없다. 굳이 꿈에 대해서 얘기하면 잘 들어준다. 그뿐이다.
물론 나도 반복되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꿈은 어떤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성을 통해 그것을 해석해 보면 나의 심리가 어떤지는 그 유명한 아무개들의 책을 읽지 않아도 뻔하다.
그럼에도 언제나 같은 꿈을 꾸고 나면 마음이 괴롭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절망 때문에 괴롭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우울증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기질적으로 여러가지 정신적 제약을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그 중의 하나의 인자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그 우울감이 세계와 적대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나의 현재를 우울하게 만든다. 오늘 밤 약을 먹고 잠시라도 편히 잠들고 싶은 나에게 구원은 약이지 누군간의 헛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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