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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1118) 산책

by 길철현 2016. 11. 18.


감기는 끝물인데 기침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거기다 같이 탁구 시합을 나간 [여자팀]이 우승을 해서, 우승턱으로 한우를 먹었는데, 너무 과식을 했던가 며칠 째 속이 별로 좋지 않다.


어제는 지친 심신을 달랠 겸 바람을 세러 차를 몰고 시외로 나갔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한적한 시골길이나 또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임도 등을 걷는 것은 인생살이의 큰 호사 중의 하나이리라. 이미 걸어본 길도 좋지만, 가보지 않은 길, 그래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길은 그 안에 작은 신비를 갖고 있어서 더더욱 흥미롭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별내 신도시 [본죽]에서 탈이난 속을 달내고 어디를 걸을까, 하다가 문득 길 하나가 떠올랐다. 4년 전쯤이었나? 과도한 지출에 따른 상당한 부채에 대한 부담, 그리고 정신분석적 상담을 받으면서 올라오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로 내 마음은 흔히 하는 말로 한 발 앞으로 내밀기만 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것이었다. 가슴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뭔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기분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은, 도저히 이 삶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죽음이 바로 옆에서 시뻘건 이를 내밀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 때 그래도 걸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하고 진건이라는 곳에 가서 이름도 모르는 야산에 올라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시각이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그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고 내 안에 있는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애꿎은 소나무를 옆차기로 가격하기도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든 그런 한 시기.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그 길에는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 그리고 꽤 먼 산행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상당히 분주했다. 나무들이 옷을 벗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그 산길은 예전에 내가 걸었을 때처럼 인적 하나 없는 버려진 길이 아니라 진건 사람들이 즐겨찾는 뒷산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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