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는 여행길에 나서 어느새 경포대에 와 있다.
대통령이기에 앞서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듯이,
나 역시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앞서 남자로서의 사생활이 있다.
날이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꾸준한 파도 소리(무한반복이란 이 파도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위로
갑자기 민박집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혹시나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어젯밤에는 걸어서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았다.
호숫가를 둘러싼 호텔과 상가들의 불빛들이 아름답게 빛났고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도 산책 코스로 적절했다.
오후에 들른 정동진의 거대한 모래시계는
그 안에 든 모래가 다 떨어지는데 꼬박 일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유포한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를 시간의 노예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슬픈 열대]에 나오는 남미의 부족은
우리와는 뭔가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것도 같은데.)
멀리서 푸르게 일렁이며 다가와서는
물이 끝나는 지점 인근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또 바위 같은 곳에서는 하늘로 솟구치며 비산하는 파도
언젠가는 나는 저 파도를 이름모를 야수라고 불렀었지.
글을 쓰는 사이에 비가 잦아 들었다.
새벽 바닷가에 나가봐야 겠다.;
'하루를 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1127) 미리 올해를 돌아보면서 (0) | 2016.11.27 |
---|---|
(161123) 모든 것은 언어다 (0) | 2016.11.23 |
(161121) 태백산 (0) | 2016.11.21 |
(161120) 맹렬함 (0) | 2016.11.20 |
(161119) 성역 (0) | 2016.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