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없는 나라**** 김향숙(문학과 지성사)
김향숙은 신경숙과 함께 지금 문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다. 연배로야 김향숙이 많고, 문단 활동도 좀 더 빠른 편이지만 나로서는 두 작가를 거의 같은 시기에 접해서, 두 사람의 작품 경향이 여성 특유의 세심한 심리 묘사라는 일반적인 점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데도 항상 같이 생각하게 된다.
이 연작장편에 실린 작품들 중 세 편은 이미 접한 소설이었다. [이상문학상] 후보작으로 실린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길찾기’, 그리고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안개의 덫’과 그 때 같이 실린 ‘문없는 나라’ 등인데, 사실 이 작품들을 따로 읽을 때마다 느낀 점은 미완결성이었다. 연작 형식으로 된 이 소설집을 읽고 난 뒤에도 그러한 느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전후를 살필 수가 있고, 등장인물의 관계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어서 좀 나은 편이다.
사말적인 이야기는 이 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이 소설은 인간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계급간의 갈등을 제시하고, 그 계급간의 갈등은 과연 극복, 아니 화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에 천착하고 있다. 이 전의 신분의 벽은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실지로는 인간 사회에 엄존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계급(혹은 계층)간의 교류에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다.
교장의 딸이며 피아노를 전공한 ‘정원’과, 사생아에다 국민학교를 나왔을까 말까한 ‘장준구’와의 결합은 좀 더 따지고 보면 ‘정원’의 결함과 ‘장준구’의 장점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듯 하다. 정원이 단순한 이혼녀가 아니라, 전남편이 간첩 혐의를 받았다는 점은 정원이 속해있는 계급에서는 거의 치명적인 흠이다. 반면 장준구는 혈혈단신,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인물이지만 외면적으로는 ‘노조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점, 즉 정원의 흠집과 장준구의 감투도 계급간의 결합을 쉽게 해주진 못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작가는 필요이상으로 이 계급간의 교류의 어려움을 부각시켰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런 속단을 내리기 전에 작가의 눈을 존중하고, 작품의 전개를 따라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의 교류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작품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정원의 친가 식구들의 몰이해가 가장 핵심적으로 등장하고, 그 다음에 장준구 동료들의 정원에 대한 몰이해, 장준구에 대한 비난 등도 들 수 있겠다. 두 사람의 결혼도 가만히 따져보면, 장준구는 정원을 사랑했기 때문인데 비해 정원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반작용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도(물론 전적으로 그렇게 볼 수 만은 없겠지만) 두 사람의 결합이 원만하지 못한 한 원인이다. 정원이 처한 어떤 특수한 위치 때문에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그녀에게 굴레로 작용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튼튼한 보호막 역할을 했을 거라는 점도 이 시점에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그녀는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새로운 경험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지금 현재로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점은 마흔이나 다 된 장준구가 왜 그렇게 정원에게 매달렸을까 하는 점이다. 진정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정원에게 어떤 특별한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갈등은 정원 친가의 장준구 거부, 또 정원 자신의 장준구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 등으로 증폭되기도 하지만 정원 나름대로 놀이방에 나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장준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의 기억으로는 장준구가 정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보다는 정원이 장준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크게 부각되는데 이 점은 좀 더 고찰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 두 사람과 등거리에 서서 두 사람을 다 이해하고, 두 사람을 이해의 장으로 이끌어 가는 인물은 바로 정원의 딸 예인이다. 작가가 예인의 성격을 선한 인물로 설정한 것은 두 사람의 매듭을 풀어주는 역할을 할 매개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어떤 점에서는 도저히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백치]에 나오는 므이쉬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원과 장준구의 갈등은 장준구의 죽음이라는 이상한 방향에서 끝을 맺고 마는데, 작가가 화해의 실마리로 제공하는 것은 정원이 죽은 장준구의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부분과 또 딸 예인이 그것을 원하는 부분이다. 이 소설은 이런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끝을 맺는다. 작가가 버거운 문제를 자신의 역량이 닿는 한에서 천착해 보려했다는 걸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고, 평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사람이 잊고 지내기 쉬운 문제를,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덮어두고만 싶은 문제를 끄집어 내어 탐구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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