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독서일기95-00

장 자크 루소 - 고백록 [Rousseau, Jean-Jacques: The Confessions (Penguin)] 98년

by 길철현 2016. 12. 1.

 

***Rousseau, Jean-Jacques: The Confessions (Penguin) (1229)


[두 달이나 걸렸다는 것은 내 독서 속도가 얼마나 느린가, 얼마나 게으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이 두 달 간의 내 마음의 상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논문 실패, 내 삶을 완전히 허공에 던지려는 시도, 그것의 두려움, 혹은 무서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좌절, 마음의 불안, 이런 것이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내 안에 있었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 나아가야 한다.]

 

자서전이라는 문학 장르는 97년도 일 학기에 대학원 수업으로 19세기 영국 작가들의 자서전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나에게 친숙한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97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내 생애의 주된 관심은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자서전은 그것에 대해 자신의 삶을 제시함으로서 개인 나름대로의 답을 보여주는 셈이라, 나의 관심사와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한 가지 명심해야 했던 점은 인간의 기억이란 과거를 왜곡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작가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작가의 행적에 대한 기술은 오히려 전기가 객관적일 것이다. 자서전에서는 작가가 자서전을 쓰는 당시의 인상, 그러니까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과거의 사실에 대한 자서전 작가의 해석을 우리가 본다는 점이다. 루소의 자서전은 그러한 정의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루소는 이 작품 내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자신의 무의식의 커다란 힘, 이를 테면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 알고 나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힘의 이끌림에서 자유로운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루소는 자신의 공언을 지켜나가려 애를 쓰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50대 중반까지의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을 중심으로 쉬운 문체로 기술해나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루소가 당대 유럽의 최고 지성이 되기위해 별다른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전생애는 자신이 타고난 기질대로 산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가 고향을 떠나, 유럽을 방랑하고, 마담 바랑의 집에서 거주하는 book 1의 내용은 인생을 되는 대로 살아가는 방탕아 내지는 한량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의 후반부의 생애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그가 늘 죽음을 직면하고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과정도 노력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영감의 산물로 보인다. 한 마디로 그는 재능을 타고 난 인물인 셈이다. 자서전의 후반부는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두려움과 염오감으로 온통 차 있어서 흥미를 반감시킨다.

[고백록]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꾸밈이 없고 사실적인가 하는 것은, 영국의 19세기의 자서전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우리의 취향에 유럽 대륙인들이 더 와닿는 것은 그 까닭일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의 기대만큼 감명을 주지는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에서 살다간 한 인물의 기록으로서는 놀라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