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문지사 98년 1월 22일 작성(99년 11월 2일 옮겨 씀)
왜 나는 문학을 하는가?
어려서부터 책읽기는 좋아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어렵고, 귀찮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 현재도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문과에 진학을 했고, 또 과내에 있는 “문예창작반”이라는 학회에 들었다. 그것이 벌써 햇수로는 13년 째나 된 일이다. 문학 활동--책을 읽는(문학 서적을 읽는) 행위에서 직접 글을 쓰는 창작 행위나, 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분석하는 비평--을 13년 간이나 해왔다면, 뭔가 지금쯤은 문학에 대한 신념이 설 때도 되었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내 삶에서 “문학”이라는 두 글자를 빼 버린다면, 내 삶은 알맹이가 많이 빠진 껍데기로만 주로 이루어진 그런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힘들고 또 때로 고통스럽긴 해도 문학은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삶에서 문학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직장 취직은 생각지 않고 대학원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문학 활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호구지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나 나름대로 이리저리 방편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이를테면 “번역”--문학 활동으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첫째로는 나의 문학에 대한 애정의 강도가 치열하지 못했던 점이 후회가 되고, 또 다른 하나 후회가 되는 것은, 마음이 너무 조급했던 나머지, 뭔가 체계적으로 문학 공부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허겁지겁, 입 안에 떠 넣기만 했던 것이다. 천천히 씹고 잘 소화시켜 내 몸의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애썼어야 하는 데 그러질 못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 되어가든 문학에서 손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왜 문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문학이 이 삶을 견디어 나가게 해주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혹은 문학은 삶의 고해라는 바다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삶을 비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 삶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 태도는 아니겠지만, 삶이 나에게 그러한 시각을 강요했으므로--다시 말해 내가 삶이라는 것을 반성적으로 생각할 즈음에는 이미 삶에 대한 나의 견해는 거의 고정된 시점이었으므로, 불리하나마 그러한 관점으로 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묻는다.
“왜 문학을 하느냐?”
삶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결정 지워진다. 탄생도 나의 의지는 아니었고, 한국에 태어난 것도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많은 부분이 결정 지워져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나는 전혀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고 할 지라도 자유롭지가 않다. 내가 삶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간다고 보기 보다는 환경이 나로 하여금 이러저러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었다는 것이 보다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도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삶을 최대한 누리고 싶다. 그 누리는 방식은 최소한의 물질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삶을 이해하고 반성하고, 향유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나의 물질적 기반의 많은 부분을 어머니가 보조하고 있으며, 나로서도 필요 이상으로 물질적 기반에 많은 부분을 써버리는 경향이 보인다.
다시 묻는다. 왜 문학이냐고? 삶이 일회적이라면 누구나 그 삶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 최상의 것이 문학에 있다고 본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이다.
'책을 읽고 > 독서일기95-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Peter Dixon, Rhetoric, 강대건, 서울대학교 출판부 [피터 딕슨 - 수사법] (2000년) (0) | 2016.12.01 |
---|---|
사또 후미다까, 아인쉬타인이 생각한 세계, 김부섭 옮김(창작과 비평사) 000117 (0) | 2016.12.01 |
장 자크 루소 - 고백록 [Rousseau, Jean-Jacques: The Confessions (Penguin)] 98년 (0) | 2016.12.01 |
루시앙 골드만 - 숨은 신(연구사) [1995년] (0) | 2016.11.29 |
김현 - 행복한 책읽기 (1995년 9월) (0) | 2016.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