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氏의 一日, 세계사 (2000년 8월 16일)
<우울증과 가난>
함민복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밀고 나가보았다. 즉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하나는 공격적인 성향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수비적인 성향의 인간이다. 그리고 공격적인 성향의 인간이 신경증을 앓는다면 편집증을 앓게 될 것이고, 수비적인 성향의 인간은 우울증을 앓게 될 것이다. 함민복의 시를 살펴볼 때, 그 제목에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는 수비적인 성향의 인간이다. 이렇게 나는 대충 결론을 지었다.
함민복의 인간적인 특징의 한 단면을 그렇게 결론지은 다음, 우리가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는 그의 시의 두드러진 측면은 그를 짓누르는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의 경도는 첫 시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선설> 전문
이 시는 손가락이 열 개인 것과,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있는 것의(정확하게는 구 개월 십 일인가이지만) 일치에 시인이 주목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제목 <성선설>로 이어지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어찌보면 주관적인 눈의 탓이다. 은혜를 입는 것과 성선설과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나는 그래서 이 시를 이렇게 패러디 해보았다.
성악설
발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달이나 기다려야
바깥 세상으로 뛰쳐나가
살육을 저지를 수 있나를 기억하려는
태아의 지적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의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상되는 무조건적인 긍정 내지는 수용?은 ‘그의 시에서 어머니의 삶의 자세는 다른 많은 서정시들의 경우처럼 부드러움과 슬픔의 정서로 그려지고 있거니와 바로 이같은 정서의 특징이 그의 현실에 대한 자세를 어느 정도 소극적인 것으로, 그리하여 그의 현실에 대한 시선을 다소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99)’라는 이경호의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허약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오, 이 세상 모든 눈물 속에는 그 에미가 있었구나
(어머니와나의교집합가슴에눈물로빗금그어온가난한날들,
어머니눈물속에들어가세상을바라다보면
먼저내눈물속에들어와세상을바라다보고계시는어머니)
눈물 속을 흐르는 血이여
목숨이 목숨을 낳는 비린내여
어째 저 생명을 사료가 빚었다 할 수 있으랴
--<産--돼지의 일생 1> 부분
[Love Is Not Enough]이라는 브루노 바텔하임의 책 제목처럼, 이 세상의 문제는 사랑이나, 따뜻함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을 뒷받침해 줄 지혜나 다른 것이 없다면 현실적인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함민복의 경우에 있어서, 가난이라는 굴레로 인해 세상,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무기력해지고 그 결과 ‘죽음에 대해 콤플렉스(71)’에 빠진 ‘우울증’ 환자가 되고 마는 것인데, 그러한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혹은 ‘삶에의 무조건적인 긍정’이 없다면 삶은 견딜 수 없는 그런 것이 되고 말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박수소리 1>이라는 작품을 본다면 그의 심성이 ‘선하고 소극적(102)’이라는 걸 엿볼 수 있다. 이 시에서 그는 불우이웃에게 주는 라면 박스를 조례 시간 같은 때에 단상에 나가 받아야만 했던 유년, 그는 그 유년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고(신현림이라면 그 라면 박스를 차 버리거나, 밟아 버렸으리라) ‘라면 박스를 껴안은 채, 슬로비디오로, 쓰러’진다.
그의 소극성이 우울증을 불러왔던 것일까? <우울씨의 일일> 연작은 물론,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그 제목을 따온 것이지만,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고(시의 내용과 그의 전기적인 측면도 잘 매치가 된다.) 그의 시에 중심적인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호프집 같은 곳에서 카운터를 보는 우울증에 걸린 우울씨가 우리의 현대를 보는 시각(그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한 게 공평(60)’하고, ‘아황산가스와 스모그의 하늘(78)’로 대표되는 환경 오염이 극에 달해 있는데, 무기력한 시인은 <잡념>으로 일관하고 있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이 연작시는 그의 연약하던 목소리가 최대한으로 피치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첫시집으로 엿본 함민복은 이경호가 지적한 두 가지 문제, 첫째 ‘그의 시에서 현실은 그가 어둡고 밀폐된 방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그가 책임질 수도 없는 공간 속으로 밀려나 있다(102).’ 둘째, ‘그의 허기가 가난함에서 오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현실이 보여주는 허기는 욕망의 과포화를 조장하려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허기의 차이를 그는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103).’ 이 두 문제가 노정되어 있다. 그것이 일단 그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된다. 사족처럼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의 시는 목소리가 격앙되지 않으면서도 탄탄한 느낌을 준다.
우울氏의 一日 2
잡념, 우울씨는 잡념에 대한 잡념에 빠진다
(순환논리, 혹은 말장난을 경계하면서)
잡념은 진행성을 띤 념에 브레이크를 거는,
념의 휴식, 또는 숨구멍이다
잡념은 념의 탕아인가 잡념은 념의 사생아인가
그렇지 않다. 잡념은 사회의 념들이 어우러지면서
창출해낸 거세되지 않은 사회상의 직관, 혹은
념들의 융합체, 그 대변자이다
잡념은 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정신적 유희이며
논리성을 띤 상상력의 극치다
논리성 문제에서 꿈은 잡념에서 제외될 수 있다
잡념엔 살만 풍성한 분위기적인 것과
뼈대만 왕성한 스토리적인 것이 있다
후자가 강한 우울씨는 잡념이 념을 초극하면서
우울증이란 병을 얻게 되었다
우울씨는 자신이 갖는 잡념을 기록해봄으로써
잡념에 대한 위의 정의를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잡념에 깊이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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