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갑수, 단 한 번의 사랑, 문학동네(2000년 11월 14일)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학벌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삐딱한 눈으로 최갑수를 폄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리라. 거기다 이문재의 해설도 최갑수의 시를 제대로 조명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이 시를 상당히 빨리(두 시간이 채 안 걸렸으리라) 읽어내었다. 그것은 그만큼 최갑수의 시가 말하는 세계가 나에게 낯설지 않고, 또 그만큼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데도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시를 몇 편 읽고 난 나의 느낌은 시적 표현의 성취도는 어느 정도 된 듯 한데, 그 뒤에 문학적 토양이랄까, 사고의 깊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최갑수는 얄팍했다. 나는 시집을 읽어나가면서 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래서 빨리 읽어나갔던 것이다. 이 시나 저 시나 차별성이 별로 없었다.
이 시집을 꿰뚫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실패한 사랑’이리라. 이 진부한 주제에 뭔가 새로운 입김을 최갑수는 불어 넣고 있는가? 그렇지도 못하다. 물론 몇몇 시편들은 아름답고 작품으로서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최갑수에게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깊이있는 문학적 체험이리라. 다음 시집이 어떤 모습을 띨 지 자못 궁금하다.
한 번이면 된다
오직
단 한 번
유서를 쓰듯
우레가 치듯
나에게 오라
부디, 사랑이여
와서 나를 짓밟아라
--<단 한 번의 사랑> 전문
이 시를 표제시로 삼은 것은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시는 최갑수 시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시 자체는 다분히 주관적인 진술로 흐르고 있으며,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다만 마지막 행 ‘와서 나를 짓밟아라’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문재는 최갑수의 시가 자학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파괴적이고, 메조키즘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아주 간절한 사랑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짓밟기를 바라는 심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해서 최갑수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이 디지털 시대--새로운 것, 빠른 것, 가벼운 것, 눈부신 것, 자극적인 것들이 지천인 이 시대에 ‘밀물여인숙’이라니, 알전구라니, 선창가라니, 유곽이라니, 뱃고동 소리라니.
--110
이문재의 지적처럼 최갑수의 시는 달과 바다와, 시골 여인숙 같은 70년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시를 빚어내고 있다. 그 점에서 어찌 보면 그는 구닥다리 신세대이다. 왜 이렇게 되고 만 것일까?
더 춥다
1월과 2월은
언제나 저녁부터 시작되고
그 언저리
불도 들지 않는 방
외진 몸과 외진 몸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높은 물이랑이 친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어요,
집 나선 지 이태째라는 참머리 계집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며
부서진 손톱으로
달을 새긴다
장판 깊이 박히는 수많은 달
외항을 헤매이는 고동 소리가
아련하게 문턱까지 밀리고
자거라,
깨지 말고 꼭꼭 자거라
불 끄고 설움도 끄고
집도 절도 없는 마음 하나 더
단정히 머리 빗으며
창 밖 어둠을
이마까지 당겨 덮는다
--<밀물여인숙> 1
최갑수의 시는 분석이나 해명을 할 필요가 없이 시 자체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부각된다. 한 편의 시와 다른 한 편의 시가 또 그다지 차별성도 없다. 시적인 수련과 자신의 기본적인 감정으로만 시를 써 나가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에 드러나는 이미지를 이문재의 글을 빌어 살펴보자.
나는 <밀물여인숙 1>에서 우선 그의 표현 능력을 높이 샀다. “외진 몸과 외진 몸 사이/하루에도 몇 번씩/높은 물이랑이 친다”와 같은 구절은 이미 신인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시인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집 나선 지 이태째라는 참머리 계집은/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며/부서진 손톱으로/달을 새긴다/장판 깊이 박히는 수많은 달.” 뿌리뽑힌 삶, 외로운 삶, 고단한 삶, 어제와 내일이 없는 삶의 부서진 손톱이 달로 변하고, 여인숙 허름한 장판이 밤하늘로 돌변하는 상상력이 나를 매혹시켰다. 달의 상상력! (110)
부서진 손톱이 달로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서진 손톱으로 달을 새긴다고 했으니까. 손톱으로 장판을 눌러 달을 새기는 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리라. 하지만, ‘여인숙 허름한 장판이 밤하늘로 돌변하는 상상력’이라는 말에는 공감이 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시이자, 가장 먼저 보았던 시는 <창가의 버드나무>이다.
세월은 또 내게
어떤 모양의 달을 보여주려나,
누군가 먹다 남은 달
차마 하지 못한 말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그 여자
화투패를 뜹니다
空山에 明月이라
기다리지 않아도 님이 온다,
식어버린 톱밥 난로 옆
그믐처럼 눈을 내리깔고서
그 여자, 좋았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호오호오 입김을 불어가며
유리창 위 뜻 모를 글자를 새깁니다
나도 한때는 연분홍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지는 꽃을 막을 수야 있나,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고
겨울이 깊어도 그 여자의 등뒤는
닳고 닳은 봄
색이 바랜 꽃무늬 벽지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낡은 탁자 위
그 여자가 놓아둔 공산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 점 보름달처럼
환하게 떠올라 있습니다
--전문
늙어버린 창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는 마지막 이미지가 아름답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역시 지울 수 없다. 앞으로의 그의 시에 깊이가 느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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