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 나와 너, 표재명, 문예출판사(070306)
부버의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나에게 큰 울림으로 나가왔다는 말은 하고 싶다. ‘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 그것에 대한 부버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해명인 이 책은, 속화되고 물화된 신을 구해내어, 신을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혹은 우리의 ‘온 존재를 기울여 자신의 [너]에게 나아가고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너]에게 가져가는 사람만이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신을 발견하(103)’게 된다는 것을 시에 근접하는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이중적인 구조로 해명해 보려는 착상이 새롭고도 귀를 기울이게 한다.
세계는 사람이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의 이중성에 따라서 이중적이다.
근원어는 낱개의 말이 아니고 짝말이다.
근원어의 하나는 [나--너]라는 짝말이다.
또 하나의 근원어는 [나--그것]이라는 짝말이다. 이때에 [그것]이라는 말을 [그] 또는 [그 여자]라는 말로 바꿔 넣더라도 근원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의 [나]도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근원어 [나-너]의 [나]는 근원어 [나-그것]의 나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5)
(이 부분을 말러 식으로 풀자면, [나--너]는 나와 어머니의 관계, [나--그것]은 나와 세상과의 관계라고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의란 기표와 기표 사이의 관계, 혹은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소쉬르의 말(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그의 이 도입부는 대단히 인상적이고, 그가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레비나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 그의 사상은 중심성(Centeredness)을 강조하는 틸리히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또 정신분석학의 ‘대상관계이론’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삶에 대한 온전한 긍정, 올바름을 내세우는 그의 글은 감동적이고 희망적이다. 그의 글의 허점이나 모순은 내 정신이 또 키를 키워야 보일 것이다. 일단은 그 앞에 엎드려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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