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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

Dear Vincent

by 길철현 2016. 4. 9.


Dear Vincent1


  (머릿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서부터 여러 생각이 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네요. 나는 당신을 지극히 가깝게 여기는 반면,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무얼하는 사람인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모를테니까요. 그건 어쩌면 요즈음 텔레비전(텔레비전이 무엇인지 당신은 모르겠지만요) 시대의 스타와 팬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거리감과도 유사한 듯 하네요. ‘빈센트에게’라고 하자니 너무 건방진 것 같고, ‘빈센트 님’하자니 그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편지 머리에다 흔히 쓰는 ‘Dear’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본디부터 당신의 성 보다는 이름을 좋아하셨으니까, 반 고흐 대신에 빈센트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겠지요.)


  보고 싶어도 당신을 보러가지 못하는 내 사정을 잘 알고, 당신은 맑은 가을날을 골라 몸소 저를 찾아 한국에까지, 송구스럽게도, 오셨군요. 덕수궁은 가을 햇살과 소풍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해맑았습니다. 내가 특히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의 왁자지껄함과 웃음소리가 내가 당신을 만나는 덕수궁 내의 미술관 안에까지도 울려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미술관 안은 개막일임에도 불구하고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전시실로 들어갔는데, 당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달 전부터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고, 전시 작품 목록에 당신이 있다는 걸 눈으로 귀로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문득 나는 당신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간절하게 바라는 것들은 자주 배반의 얼굴을 보이곤 하잖아요--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어디 구석자리에서 천대받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당신은 지금은 그렇게도 유명하고, 그렇게도 사랑받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내내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잖아요--도 들었습니다. 옆 전시실에도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걸 알고 바삐 걸어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니까, 베르나르 옆, 전시실 가장자리에 있던 당신이 아는 체를 하더군요.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의 만남은 겉으로는 무덤덤했습니다. 아마도 당신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였을까요? 혹은 잘못된 입놀림이나 허튼 동작으로 당신의 심기를 거스를까 저어하는 마음이었까요? 혹은 기쁨을 겉으로 표시하지 않고 안으로만 간직하려는 의뭉스러움이었을까요?

  당신은 이번에 파리 시절 초기의 작품인 [몽마르트의 술집](1886년 10월)과 [생-레미의 생-폴 병원](1889년 11월)으로 오셨습니다.2 나는 [생-레미의 생-폴 병원] 앞에 잠시 섰다가, [몽마르트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지, 혹 기대와는 달리 당신으로 향하는 나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나 단절 같은 것이 있어서, 침묵만이 흐를 것인지 자못 초조한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눈과 귀를 열고 [몽마르트의 술집]을, 그리고 꾀죄죄한 차림으로 반쯤 도취된 채 [몽마르트의 술집]을 그리고 있는 파리 시절의 당신을, 보고 들으려 애를 썼습니다. [몽마르트의 술집]은 집에 있는 당신의 화집에서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기진 못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겐 죄송스럽지만요. 이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세례 가운데에서도 네덜란드 시절의 어두움에서 당신이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였습니다. 거기다, 당신 특유의 벼락처럼 그려나가는 수법 때문인지 정제되지 못한 구석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림 아랫부분에 위치한 술집의 바닥과, 그림 윗부분의 등나무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술집을 덮고 있는 넝쿨나무는 붓으로 그리지 않고 튜브에서 직접 짜내서 그리기라도 한 듯(네덜란드 시절에 당신은 많이도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렸으니까 정말 그랬을 지도 모르지요) 두텁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특히 그림의 오른 쪽 윗부분 넝쿨이 뒤엉켜 있는 곳은 물감이 정말 떡칠이 되어 있더군요. (화집에서 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물감의 두께가 실감나게 다가오더군요. 당신이 그림을 그리는 내내, 물감 값 때문에 가슴을 졸이며 산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백 년도 지난 그림이 마치 며칠 전에 그린 그림인 듯 색조가 생생한 것을 보니까 ‘우리는 가지만 작품은 남는다’라는 당신의 말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잎이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의 한 옥외 술집 풍경을 통해 당신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꼭히 무엇을 말하려 했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주는 심상을 옮긴 것일까요? 그림의 정중앙에는 까만 옷에다 흰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가 서 있더군요. 그리고 탁자 여기저기에는 손님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네요. 웨이터 앞의 탁자는 비어 있고, 그림의 전면에는 가스등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위로 날아오르고. 문득 나는 이 그림이 당신의 외로움을 표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는 내 인상이 이끄는 대로 당신의 그림을 읽어나갔습니다. 손님들의 주문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는 웨이터와, 공교롭게도 모두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앉아있는 손님들. (그리고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경우는 모두 남자 여자였습니다. 하긴 당시에 여자끼리 술을 마신다는 것은 보기가 쉽지 않은 광경이었을 겁니다.) 이 웨이터는 당신의 외로움의 표상이고, 웨이터 앞에 놓인 빈 탁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당신의 마음이고, 전면에 있는 가스등은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당신의 신념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는 비상하는 당신의 영혼,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참으로 주관적인 그림 읽기인 셈이지요. 당신이 이 그림에서 비록 그런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세상과 화합하며 지낼 수 없는 당신의 외로움과, 온갖 난관에 맞서 온몸을 던져 그림을 그려나가던 당신의 그 꺾이지 않는 의지를 이 그림 앞에서 다시금 되새길 때 눈시울이 뜨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그리고 왼쪽 하단부에 그림용 칼 같은 것으로 서명한 Vincent에서 더욱 가깝게 당신을 느낀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나는 그림에 문외한에 가까우므로 좀 더 객관적으로 말할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느낀 것을 말할 수는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당신의 그림 앞에서 꿈을 꾸는 동안, 당신이 무척이나 기쁘게도, 여고생 세 명이 와서 당신의 그림을 보면서 “와, 정말 멋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요. 당신 그림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그런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전시실이 시끄러워 지더니, 미술 강사인지 누구인지가 자신의 수강생들인지를 우르르 몰고 와 그림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잔은 현대 미술의 개척자이다. 베토벤이 악성이라면 그는 화성이라고 할 만한 사람으로, 예술의 질서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법을 개척했다. 고갱과 베르나르는 구획주의와 종합주의를 서로 창시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내가 서 있는 곳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왔습니다. 혹시라도 그가 당신의 그림에 대해서 귀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할까봐 잠시 귀를 기울였으나, 당신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다는 일반적인 이야기에 덧붙여, 당신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이 보리나주 탄광촌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는 엉터리없는 이야기를 해, 나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습니다.3 이 사람들은 그림은 별로 보지도 못하고 강사의 이야기만 듣고는 다음으로 옮겨 갔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또 허리도 아픈 것이 당신의 [몽마르트의 술집] 앞에 꽤 오래 서 있었던 같습니다. 나는 전시실 밖으로 나가 의자에 잠시 앉았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당신을 만났다는 기쁨과 충만감이 나를 감쌌습니다. 잠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이번에는 [생-레미의 생-폴 병원] 앞으로 다가 섰습니다. 생-레미 시기 특유의 굵고 뚝뚝 끊어지는 필법으로 그려나간 이 작품은 아쉽게도 나에게 별다른 울림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의 삶이 비극적 종막을 향해 치닫던 때, 그 한 가운데에 놓인 그림인데도 나는 이 그림이 전해주는 목소리에 가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잠시 당신을 떠나 코로며, 밀레며, 쿠르베며, 마네, 피사로, 시슐레, 모네, 드가, 르누아르며, 세잔느, 고갱, 베르나르, 쇠라, 로트렉, 르동, 보나르, 뷔아르 등 인상파를 전후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차례로 보아나갔습니다. 교과서에서 익히 봐온 밀레의 [이삭줍기],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 쿠르베의 [샘] 등을 직접 본다는 감동이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만, 그리고 이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기까지의 힘겨움 같은 것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저 좋다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은 없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을 만나러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 사랑이 더욱 깊어져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도 질투하기 보다는 그런 나를 더욱 북돋아주시겠지요. 거기다 밀레는 당신의 정신적인 스승이었으니까요.4 다시 한 번 [생-레미의 생-폴 병원] 앞에 섰지만, ‘정신 병원 앞의 뜰이며, 왼편에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소나무며, 병원 뒤쪽으로 보이는 하늘이며, 이런 것이 하나로 소용돌이 치고 있구나’하는 것 정도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당신을 만나러 다시 이곳에 오겠지요.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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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덕수궁 미술관에서 [인상파와 근대미술](2000년 10월 26일--2001년 2월 27일)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들 중,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두 점을 보고 난 느낌을 그에게 말을 거는, 혹은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적어본 것이다. [본문으로]
  2.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활동은 대체로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네덜란드 시기(1880--1886), 2)파리 시기(1886년 2월--1888년 2월), 3)아를 시기(1888년 2월--1889년 5월), 4)생-레미 시기(1889년 5월--1890년 5월), 5)오베르-쉬르-우아즈 시기(1890년 5월--7월 29일). 그러니까, 이번에 전시된 두 작품은 각각 파리 시기와 생-레미 시기의 작품인데, 특히 [몽마르트의 술집]은 ‘당시 빈센트가 몽마르트를 소재로 그린 많은 풍경들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그 구도와 화법은 이미 향후의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오베르-쉬르-우아즈 성당], [낮잠] 등에서 보여주게 될 반 고흐 고유의 화법을 그대로 예시하고 있다’라고 이번 전시회 도록([인상파와 근대미술])은 소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3.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년 4월)은 빈센트 반 고흐의 네덜란드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 그림은 그의 아버지가 목사로 있던 누에넨이라는 농촌의 한 가정의 저녁 식사 모습을 그린 것이다. [본문으로]
  4. 빈센트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보낸 생-레미 시기에 밀레의 그림 상당수를 자신의 독특한 해석으로 모사했으며, 늘 그를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명으로 손꼽았다. [본문으로]
  5. 이후 이 그림을 다시 본 느낌을 정리해 보았다. 정신 병원의 뜰 왼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대지와 하늘도 생명의 에너지로 충일하다. 소나무가 일직선으로 곧게 뻗지 않고 굽은 것은 일정한 방향성에 속박되지 않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실적이라고 보기 힘든 초록 나뭇잎에도 그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으로]
  6. 소나무와는 대조적으로 병원 건물은 파스텔 색조로 창백하리만큼 차분하다. 소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이 이 시기 특유의 굵고 끊어지는 역동적인 화법을 보여주는데 반해, 병원 건물은 수직과 수평의 붓놀림으로 너무나도 침착하다. 정신 병원이라는 건물을 통해 문명이 인간에게 가하는 원초적 생명력의 억제나 감금의 상태를 암시하려고 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소나무 옆에는 한 사나이가 서 있다. 단정하고 말쑥한, 전형적인 신사복을 입고 있는 남자. 나무를 등지고 있는 이 남자는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아주 당당한 자세로 어딘가를 보고 있다. 이 남자는 노란 모자를 쓰고 병원 문을 막 나서고 있는 사나이와 대조를 이룬다. 이 남자는 왜소하고 볼품없으며, 자세도 어딘지 모르게 엉거주춤하다. 꼭 왼쪽 다리를 절고 있는 듯하다. 이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 병원의 의사이자 경영자였던 페이롱과, 정신 병원에서 감금되다시피 지내야 했던 고흐 자신을 읽어보기도 한다. 이 그림에서 나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필요불가결하게 그러한 생명력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문명의 모습이 대비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그림에서의 나의 이러한 주관적인 독법은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ment]의 영향을 받은 듯이 보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