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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김만중, 구운몽, 송성욱 옮김, 민음사(100823)

by 길철현 2016. 12. 16.

*김만중, 구운몽, 송성욱 옮김, 민음사(100823)

이승욱, 정병립 교주, 교문사

 

김만중의 [구운몽]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작품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진이라는 불제자가 팔선녀를 만나 잠시 희롱을 하였는데, 그 벌로 성진은 양소유라는 인물로 환생을 하고, 팔선녀도 모두 환생을 한 다음,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양소유가 이 현 세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이 팔선녀들을 모두 아내 혹은 첩으로 삼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이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고는 불교에 귀의하려 하는데, 그 모든 부귀영화가 단지 하룻밤의 꿈이었다는 것을 성진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사실 원문을 그대로 읽은 것도 아니고(그러기가 힘이 들기도 하지만) 또 조선 시대 다른 작품을 읽은 것이라고는 [춘향전] 밖에 없어서, 이 작품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이 된 까닭을 비교적인 측면에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송성욱이 현대어로 옮긴 글을 읽고 드는 느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문화, 혹은 동양 문화의 전통에 대한 무지라는 측면과 또 서양문학에 길들여진 나의 감수성이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관중의 [삼국지]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렇긴 하지만 초인적인 혹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소유라는 인물과 또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고 현숙한 여덟 여자의 이야기가 어떤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서양 문학의 이야기와 두드러지게 보이는 차이점은(그리스의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극을 나는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데), 이 작품에는 우리 인간을 악으로 몰고 가는 정욕의 발작이라는 측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윤리에 순응하는, 다시 말해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더 앞세우는 미덕을 갖춘 그런 인물이며, 유일하게 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보이던 태후조차도 그 갈등을 원활하게 해결할 묘책을 찾아낸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도덕군자의 이야기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복장전환을 한다든지 하는 다소 파격적인 행위와, 또 극심한 갈등은 아니지만 거짓말로 서로를 놀려주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 특히 우리의 사유 방식은 우리 전통의 것이면서도 근대에 서구 문명의 큰 테두리 속에 포섭되어서 오히려 낯선 것이 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작품들이(특히 신소설에 있어서) 서구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위축되는 면이 없지 않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편견이기도 하고 또 우리 것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편견이라는 것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문학 작품이 그래도 인간관계의 다양한 측면, 근본적인 충돌 이런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기대가 서구적인 것이며 동양의 세계관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 있다면 좋겠다.) ([춘향전]에서도 인물은 유형화되어 있고 사건의 전개 또한 단순명료한데 다만 춘향의 이몽룡을 향한 마음은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조 문학상 응모를 위해 그래도 이번 기회에 꽤 많은 작품을 읽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