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고흐 시편83 모브의 회상 -- 오탁번 나무에 꽃이 피어 나무도 꽃이 된다 나의 언행은 지금 동결되어 늑대의 가죽을 허리에 매었다 너의 선생은 한 그루 소재가 되어 저승의 숲 속에 피어 있었다 흰 이빨을 드러내고 너는 웃으며 저승의 숲으로 뛰어가 귀신이 서린 꽃나무를 훔쳐내어 현금이 넉넉한 재벌이 되어 뽐낸다 내 이미지의 유통은 막히어 수많은 재능의 방은 있어도 매매가 되지 않았다 현금이 없는 나는 반 고호 너의 쩔렁이는 지갑 앞에 꼼짝없이 무릎 꿇는다 2022. 3. 15. 고호·까마귀떼가 나르는 밀밭 -- 불행이 끊일 날은 없을 것이다 -- 안혜경 하늘도 들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슬픔으로 가득찬 마음만이 터지면서 달려나가면 문득 급류되어 흘러가는 길 슬픔이 안겨준 몽상에 취하여 끝없는 들판을 껴안았다. 밀알마다 풀잎마다 바람은 깨웠다. 흔들리게 하였다. 수확기의 밀밭이 거친 소용돌이에 휩싸여 달아나려 하였다. 검푸르게 뒹굴고 있는 하늘, 번득이는 살의가 중얼거리며 들판을 몰아쳤다 대기를 노래시키려면 바람의 작은 속삭임으로도 충분하였다. 마셔라, 향기에 가득찬 가슴을. 폭풍우의 탄생을 밀밭 깊숙한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조각난 꿈의 웅얼거림들. 눈부신 손놀림 아래서 부서져내리던 불안의 나날. 까마귀가 물고 온 권총에는 미소짓는 숨결이 있었다. 까마귀도 내려앉을 수 없는 들판에서 영원한 출발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2022. 3. 15. 고호·실편백나무 -- 안혜경 그토록 밤을 기다리며 들판에 누어있다. 타오르는 실편백나무의 꿈틀거리는 발바닥밑에 풀잎은 대기를 휘감아쥐는 바람에 몸을 내맡긴다. 부드러운 달빛과 어둠의 융단위에 미친듯한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풀잎이 물결되어 휩쓸리며 시간을 쓰러뜨린다. 나무의 가지가 한여름의 목을 조른다. 초승달은 허공에 걸터앉아 대기를 어루만진다. 바람은 여름의 어깨위에 끝없는 몸짓으로 풀어져내린다. 2022. 3. 15. 까마귀떼 나르는 보리밭 -- 고호와 함께 -- 신진 누가 권총을 쏘았나? 납덩이에 감긴 하늘 비로소 미쳐 춤추고 보릿대가 걷는다 뛴다 솟는다. 누가 보리밭에 총을 쏘았나? 보리가 피흘리며 보리로 일어선다 고독이 땀흘리며 고독으로 일어선다 구린내 내며 일시에 목숨이 목숨으로 출렁거린다 나에게도 누군가 겨누어 다오. 뼈속에 이는 찬바람 바닥에 누워 낮은 포복을 하는 태양을 만나보련다. 유일하신 하나님 그의 딸 애 밴 창녀 크리스틴도 전도사 빈센트 너도 새까만 뼉다귀로 찢어지리라. 한 마리 풀벌레 소리 없고 일체의 숨어 엿듣는 자 없는 길 아무도 유일하지 않고 아무도 홀로인 자 없도다. 비겁한 태양이 남은 때까지 당당하게 곤두박질하는 까마귀 까마귀떼 장대비 쏟아지는 어둠가장이 유일한 목숨 어디 갔느냐? 숨소리 바람소리 듣고 싶구나. 2022. 3. 15. 이전 1 2 3 4 5 6 7 8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