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최승자30 최승자 -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1 어디까지갈수있을까 한없이흘러가다보면 나는밝은별이될수있을것같고 별이바라보는지구의불빛이될수있을것같지만 어떻게하면푸른콩으로눈떠다시푸른숨을쉴수있을까 어떻게해야고질적인꿈이자유로운꿈이될수있을까 2 어머니 어두운 배 속에서 꿈꾸는 먼 나라의 햇빛 투명한 비명 그러나 짓밟기 잘하는 아버지의 두 발이 들어와 내 몸에 말뚝 뿌리로 박히고 나는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렸다 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 나는 내 피의 튀어 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 잠은 잠 속에서도 싸우고 꿈의 꿈속에서도 싸웠다 손이 호미가 되고 팔뚝이 낫이 되었다 3 바람 불면 별들이 우루루 지상으로 쏠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밤길을 헤매고 왜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가 왜.. 2023. 7. 9. 최승자 -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어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네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 2023. 7. 9. 최승자 - 문명 어느 날 한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사만 명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 어느 날 ······ 어느 날 지구는 잠잠 무사하고 텅 빈 아시아 대륙 황량한 사막 위로 모래바람이 불어 가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한 남자 곁에 한사코, 실패한 한 여자가 눕는다. 어디선가 붉은 양수가 질펀하게 세어 흐르기 시작하고 (누구, 너희는 누구?) 허공 한 구석에서 외계인의 눈알 하나가 조소처럼 빛나고 있다. [즐거운 일기]. 문지. 1984(40) 2023. 7. 9. 최승자 - 시인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잇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 [즐거운 일기]. 문지. 1984(40) 2023. 7. 9.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