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최승자

최승자 - 문명

by 길철현 2023. 7. 9.

어느 날 한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사만 명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어느 날 ······ 어느 날 ······

어느 날 지구는 잠잠 무사하고

 

텅 빈 아시아 대륙

황량한 사막 위로 모래바람이 불어 가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한 남자 곁에

한사코, 실패한 한 여자가 눕는다.

어디선가 붉은 양수가 질펀하게

세어 흐르기 시작하고

 

(누구, 너희는 누구?)

허공 한 구석에서 

외계인의 눈알 하나가

조소처럼 빛나고 있다. 

 

[즐거운 일기]. 문지. 198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