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408

김광규 - 그대의 두 발 영화나 연극이나 오페라 보면서 두세 시간 객석에 앉았도라면 참으로 오래간만에 양쪽 발도 보행의 노고를 벗어나 모처럼 안식을 누린다 적어도 예술을 감상하는 동안이라도 마음 놓고 쉬게 하자 쉴 틈 없이 신발 신겨 부려먹으면서 착한 두 발 주물러주지는 못할망정 육신의 프롤레타리아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말자 흔히 손보다 앞서 나가면서도 악수한번 못 해보고 언제나 당나귀처럼 순종하는 두 발 씻겨주지는 못할망정 그냥 내버려두기라도 하자 다행하게도 발을 다치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은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48. 2023. 8. 24.
김광규 - 그저께 보낸 메일 오늘은 어제의 다음 날 어제는 예스터데이 비틀스 노래 속에 날마다 되살아나는 어제는 오늘의 바로 전날 독일어로 gestern/게스테른 그저께는 어제의 바로 전날 vorgestern/포어게스테른 영어로는 좀 길지만 the day before yesterday 그 긴 날 저녁때도 원고를 고쳐 쓰고 와인 한잔 마셨던가 가물거리는 그저께 기억 수첩을 꺼내 보지 않으면 누구를 만났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에 손을 뻗치면 곧장 닿을 듯 가까운 어제의 하루 전날 안타깝게도 되돌릴 수 없네 그저께 보낸 메일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31 2023. 8. 24.
김명수 - 풍선 풍  선                         김명수 비 개어 푸른 하늘 바람도 한 점 없는높은 허공에 어미의 탯줄에서버려진 아이 푸른 하늘 멀리 멀리가고 있는 아이 . . .  김명수. "월식". 민음사. 1980. - 난해한 시들은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쉬우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시에 눈과 귀가 먼저 가닿는다. 멀리 날아가고 있는 풍선에서 '버려진 아이'를 떠올린 이 시는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 운명의 한 단면, 세상에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불안과 위험과 자유?를 잘 포착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2023. 8. 19.
김춘수 - 봄이 와서 연필향 허리까지 땅거미가 와 있다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골목 위 하늘 한켠 낮달 하나 사그라지고 있다 "비에 젖은 달". 근역서재. 1980. 2023.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