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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9

김춘수 - 봄이 와서 연필향 허리까지 땅거미가 와 있다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골목 위 하늘 한켠 낮달 하나 사그라지고 있다 "비에 젖은 달". 근역서재. 1980. 2023. 8. 17.
김명수 - 하급반 교과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 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하급반 교과서". 창작과비평사. 1983. 2023. 8. 17.
이황 - 매화시 :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홀로 뜨락을 거닐으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 매화 곁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던가 밤이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깃에 향기 배고 그림자는 몸을 가득 채우네 (천영애 "사물의 무늬") 뜰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오네(步中庭月人) 매화 언저리 몇 번이나 돌았던고(梅邊行遼幾回巡) 밤 깊도록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夜深坐久渾忘起) 꽃향기 옷 가득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香滿衣巾影滿身) (영남일보, 김봉규 기자 글에서) 步躡中庭月趁人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梅邊行遼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꽃내음 옷에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출처] ​[이광식의 인문학 여행] 두향杜香.. 젊은 퇴계가 사랑한 기생 d.. 2023. 8. 16.
오탁번 - 해피 버스데이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