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409

최승자 -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해는 뜨고 언제나 달도 뜬다 저 무슨 바다가 저리 애끓며 뒤척이고 있을까 삶이 무의미해지면 죽음이 우리를 이끈다 죽음도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허(虛)와 손을 잡아야 한다. [빈 배처럼 텅 비어]. 문지. 2016 2023. 7. 9.
최승자 -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중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빈 배처럼 텅 비어]. 문지. 2016 2023. 7. 9.
허수경 -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지. 2023. 7. 3.
오규원 -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순례 1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2023.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