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9 송찬호 - 산경(山經)을 비추어 말하다 세상에는 등에 거울을 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단다 경 없이 가는 길, 그것이 문자의 운명인데도 너희, 거북이 아저씨 알지? 자신의 등을 구워 문자를 만드는 사람, 우리 동네 시인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런 거울 백 개를 모을 수 있다면 산경을 두루 비출 수 있다 했단다 2023. 5. 25. 송찬호 - 김(金)사슴 어쩔 수 없이 그 타고난 이상으로 하여 최초로 머리에 뿔이 있었던 사람 사슴의 신분으로 태어나 사자의 학교를 다니고 평생을 가둔 우리와 싸운 사람 그 유별난 이름으로 김사슴이 아닌 화려한 금사슴으로 종종 오인되곤 하던 사람 결국 그 뿔의 영광으로 하여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던 사람 만년에는 산으로 돌아와 나무와 벌레와 들꽃의 뿌리에 사슴의 똥을 나누어주었던 사람 어이 거기 누구신가, 거긴 또 누구신가 ─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벗삼아 사슴의 민둥산에 도토리 알을 심어나가던 사람 어느 가을날 문간에 앉아 그리운 사람의 편지를 읽다 추적자들의 납탄알을 맞고 쓰러져간 비운의 운명, 金사슴 2023. 5. 25. 송찬호 - 기린 길고 높다란 기린의 머리 위에 그 옛날 산상 호수의 흔적이 있다 그때 누가 그 목마른 바가지를 거기다 올려놓았을까 그때 그 설교 시대에 조개들은 어떻게 그 호수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별을 헤는 밤, 한때 우리는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다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ㅡ 노래하며 유성기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웃자람을 막기 위해 어른들이 해바라기 머리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을 때, 나는 그걸 내리기 위해 해바라기 대궁을 오르다 몇 번씩 떨어졌느니, 가파른 기린의 등에 매달려 진드기를 잡아먹고 사는 아프리카 노랑부리 할미새의 비애를 이제야 알겠 으니, 언제 한번 궤도열차 타고 아득히 기린의 목을 올라 고원을 걸어보았으면, 멀리 야구장 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면 그걸 주.. 2023. 5. 25. 최두석 -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 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정간보(井間譜) 조선 세종 때에,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악보. ‘井’ 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율명(律名)을 기입하였다. 2023. 5. 24.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10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