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동굴
정민이와 나는 아주 친한 사이였어. 다툼이야 늘 있었지만 그래도 그 다음 날이면 또 신나게 어울려 놀았지. 그런데, 우리 둘은 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개구쟁이였지.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칼로 고무줄을 끊어버리기 일쑤였어. 화난 계집애들이 우리를 쫓아오면 우리는 킬킬거리며 달아났지. 캄캄한 밤중에 화약을 터트려 지나가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지. 하지만 무엇보다 신나는 장난은 길에다 발목 정도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는 거기다 오물을 넣은 다음 표시 안 나게 흙으로 살짝 덮어서 어른들이 거기에 발을 빠뜨리는 걸 몰래 숨어서 보는 것이었어. 세상은 우리 두 사람의 장난을 위한 놀이터였고 하루해는 그 놀이를 궁리하는 가운데 바쁘게 지나갔지. 마을 어른들은 우리의 장난을 어떤 때는 아이들의 철부지 짓이라고 웃어 넘겼고, 또 좀 심한 행동을 했을 때는 부모님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우리의 장난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어.
그런 우리에게도 한 가지 엄두를 못 내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동굴>을 탐험하는 일이었어. 어른들은 우리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지.
“동네 뒤편에 솟아 있는 촛대봉을 넘어가면 또 봉우리들이 연달아 있어. 그런데 그 봉우리를 두 개 넘은 깊은 골짜기에 굴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여태까지 거기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그러니, 그 근처엔 얼씬 하지도 말거라.”
어른들의 말이라면 개가 짖는 소리 정도로도 여기지 않던 정민이와 나였지만 유독 <죽음의 동굴>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우리를 오싹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어. 어른들의 말소리나 표정에서 그 심각성이 저절로 전해졌던 거야. 죽는다는 것, 죽음, 그것에는 맞설 수 없는 없는 무서움이 담겨 있었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또 그 반대로 우리의 호기심을 엄청 자극하기도 했어.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단지 굴에 들어갔다고 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어른들이 뭔가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마저 들었어.
초등학교 최고 학년이 되자 지난 시절에 그토록 신났던 장난이며 놀이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어느 날 오랫동안 망설여 왔던 모험을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했지. 봉우리를 세 개나 넘는 먼 길이었으므로 우리는 중간에 먹을 것과, 또 어느 책에서 읽은 대로 동굴 탐험에 필요한 플래시와 실 등을 챙겨서 아침 일찍 길을 떠났어. 마을 뒷산 너머로는 어른들도 잘 다니지 않아 길마저 희미했고, 그 희미한 길을 따라 봉우리를 연달아 넘는 일은 ‘뭔가 커다란 비밀을 파헤친다’는 마음가짐이 없었더라면 진작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을 정말 힘겨운 일이었지. 어른들에게 그 동굴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어. 해가 중천을 지난 지도 한참 지난 듯했어. 그러나 널빤지 같은 것으로 막아 놓은 동굴 입구가 눈앞에 보이자 걷잡을 수 없이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어. 아니 땅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와서 우리의 다리를 잡고 흔들기라도 하는 양 떨리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 언제 어떻게 정민이와 나 사이에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민이와 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 두 사람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허겁지겁 아무 말 없이 되돌아 달려 나왔지.
이 실패한 모험은 우리 둘 사이만의 비밀인데도 동네 조무래기들의 대장 노릇을 하던 우리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지. 상처 입은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 대담한 행동을 했는데,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고 만 거야. 여름 방학이 시작된 다음부터 정민이와 나는 마을 앞 개울에서 하루 왼 종일을 보내다시피 했어. 헤엄을 치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다슬기를 줍고, 그것도 재미가 없어지면 물고기를 잡곤 했지. 그런데, 물놀이 중에서 제일 스릴이 넘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벼락 바위에서 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어. 오 미터도 넘는 높이라 조무래기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것을 정민이와 나는 보란 듯이 해냈지. 우리는 우리가 풍덩 소리를 내면서 물속으로 쭉 들어갔다가 다시 물 위로 솟아올라왔을 때 조무래기들의 그 부러움에 찬 눈빛을 다만 즐기기만 했는데, 이날따라 영구를 이 벼락 바위로 끌고 올라간 거야. 영구는 우리의 뒤를 이어 아이들을 이끌어 가야 할 놈이었는데 멍청한 데다 겁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참 한심한 노릇이었지. 그래, 명목은 영구의 간을 키워주는 것이었어. 그런데, 이 자식은 바위 끝에 서자 두 다리만 달달 떨 뿐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었어. 보다 못한 정민이가 그 놈을 물 아래로 밀어 버렸는데, 이 자식이 떨어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린 모양이야.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한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만 개울 아래쪽에서 그 자식을 건져내었을 땐 이미 숨도 쉬지 않았어. 놀란 아이들은 뿔뿔이 달아나고 정민이와 나도 그 자식을 내팽개치고 냅다 산으로 도망쳤지.
우리는 우리 앞에 벌어진 이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어. 영구를 직접 민 정민이는 나보다도 몇 배는 더 큰 무서움에 떨고 있는 듯했어. 우리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있었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가 어둑어둑해 질 때 쯤, 이윽고 정민이가 입을 떼었어.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거기에 무슨 뾰족한 답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또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한참을 더 그냥 가만히 있던 우리는 일단은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기로 했어. 이미 어둠이 내린 산길을 더듬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갔으나 그곳은 마을과는 너무 멀었고 몇 개의 전등만 보일 뿐인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어.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것도 짐작에 지나지 않았어. 일단 우리는 산속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어.
밤이 깊어지자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느껴졌어.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추위에 떨다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지. 우리는 얼굴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을 느끼며 잠이 깨었어.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어제까지 우리가 알던 그런 곳이 아니었어. 정민이와 나는 이제 우리가 마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우리는 먼 도시로 떠나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어. 영구가 죽은 것이 우리가 우리의 모험을 끝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돌아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아니 <죽음의 동굴>에는 어른들이 뭔가 큰 비밀을 숨겨 놓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 어른들만 알고 있는 비밀, 우리는 그것에 도전해 보기로 했어. 지난번처럼 비겁하게 돌아 나오지 않도록 정민이와 나는 먼저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 사람은 우리의 우정에 먹칠을 하는 비겁자라는 다짐을 해두었지.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좀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하기로 했어. 그러나, 마을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읍내로 가서 플래시며 실 따위를 훔치기로 했지. 어제 오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자꾸 나 우리는 일단 수박과 참외를 몇 개 서리해서 그것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지. 그리고는 동네 앞 야산을 넘어 읍내로 가는 길로 들어섰지. 한창 바쁠 때여서 그런지 읍내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우리는 운 좋게 읍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갈 수 있었어. 평소 같으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다는 건 간이 두 근 반 세 근 할 일이었을 터이나,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당해서인지 우리는 마치 노련한 도둑이라도 된 양, 정민이가 가게 주인아저씨의 주의를 끌고 있는 동안 나는 필요한 물건들을 솜씨 있게 슬쩍 했어. 이참에 잘 드는 칼도 하나 훔쳤지.
우리는 내친 김에 밭에서 채 익지 않은 옥수수도 따서 배낭에다 채워 넣고는 <죽음의 동굴>로 향했어.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지도 알지 못한 채. 아마 어제 그 일로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이건 미리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어. 어쨌거나 우리가 봉우리를 세 개나 넘어 동굴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해가 이미 넘어간 뒤라 사방은 어둠에 휩싸이기 일보 직전이었고, 하루 왼 종일 들길이며 산길을 걸어 다니느라 다리며, 허리며 한 군데도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어. 플래시로 썩어가는 널빤지를 비추자 다시 한 번 무서움이 폭풍우처럼 몰려왔어. 그리고, 깊은 산 속에 어둠이 깔린 가운데 우리 두 사람만 있다는 사실도 새삼 느껴졌어. 돌아서야 해, 돌아서야 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으나, 내가 먼저 비겁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아무 말도 없던 정민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입구를 가린 널빤지는 쉽게 떨어져 나왔어. 전부 다 뜯어낼 필요도 없이 한두 개만 뜯어내어도 우리가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굴은 그렇게 크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기어 다녀야 할 정도로 좁지도 않았어. 굴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뭐 아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서운 것이 아니면 뭔가 신기한 것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닥도 그다지 울퉁불퉁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평범해서 실망할 정도였어. 별다른 특징도 없이 그저 길게만 이어지는 굴. 우린 어른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깐. 그러자 차츰 무서운 생각도 잦아들고 걷잡을 수 없이 피로가 몰려왔어.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날 옥수수를 씹어 먹다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어.
얼마를 그렇게 잤을까? 잠에서 깨어난 우리는 다시 동굴의 끝을 향해 나아갔어. 굴이 따로 갈라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실로 길을 표시하거나 할 필요도 없었지. 얼마를 그렇게 걸어 나갔을까?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저 안쪽 어딘가가 빛이라도 들어오는지 상당히 밝았어.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감에 따라 그곳의 윤곽은 점점 더 뚜렷해졌어. 그곳이 굴의 제일 안쪽 부분인지 어떤지는 잘 몰라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 어딘가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그곳을 꽤 밝게 비추고 있어서 우리는 동굴의 벽과 그 공간을 밖에서와 거의 마찬가지로 볼 수 있었어. 나에게는 그곳이 지금까지 내가 봐온 어떤 곳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공간의 중간에는 삼 미터는 족히 될 폭포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깊고 푸른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어. 그리고, 이 공간을 둘러싸고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돌들이 빛을 반사하며 우리의 눈을 어지럽게 했어. 나는 다시 한 번 어른들이 우리들을 속이고 자기들끼리만 이 멋진 광경을 즐겼을 거라는 생각에 이를 갈았어. 새빨간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자기들끼리만 이 아름다운 곳을 독차지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던 거야. 정민이도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야”하고 소리를 드높였지.
그런데, 정민이가 물을 마시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물을 한 움큼 움키는 순간, 그것은 흡사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정민이를 휙 채고는 물속으로 사라졌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어.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어. 그 곳으로부터 멀어 질수록 점점 더 짙어오는 어둠 때문에 앞을 분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무작정 달려 나갔지. 그러다가 그대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야.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팠고, 저절로 손이 간 이마와 머리의 경계 사이엔 피가 끈적끈적 했어. 그 순간 나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는 정민이를 채어간 그것. 정말 번갯불이 번쩍 하는 그 정도의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엄청나게 크고 시커먼 괴물이었어. 그것으로부터 달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정민이에 대한 복수는 생각할 틈도 없었어. 그러나, 이 깜깜 지옥에서 나는 어디로 움직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지. 자칫 잘못 갔다가는 그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 나도 정민이의 꼴이 되고 말 테니깐 말이야. 아니 그 괴물이 바로 내 뒤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는 일어서 벽에다 손을 짚고는 나는 죽음과 삶 중 어느 곳으로 나아가는 지도 모른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옮겨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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