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을 써 보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듯, 혹은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를 옮기듯, 담담한 심정으로 써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그래서 질릴 정도로 진부한 것이면서도, 그 당사자인 개개인은 지도 한 장 들고 미지의 땅을 밟아나가는 모험가처럼 낯설고 서투르게 체험해야 하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더욱 쓰라릴 수밖에 없는 외사랑 이야기이다.
이성으로 향하는 사랑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인지, 그 신비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은 지난한 노릇이리라. 그러나, 늘 가까이 지내던 사람인 경우에는 마음 깊은 곳에 내재화되어 있던 감정이 어떤 계기로 인해 우리의 의식에 뚜렷하게 자각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경우 대학교에서 같은 동아리에 있던 한 학번 아래의 여자 후배에 대해 조금씩 좋아하는 감정을 키워왔 이 후배가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취업을 하자, 갑자기 그녀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치고 말리라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게 되었다. 숫기가 없는 데다 여자 앞에서는 특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여 3학년이 될 때까지 여자와 데이트도 한 번 못해 본 상황에서 후배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 것은 나로서는 여러 번의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단히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의 이 고백은 사실 앞뒤를 살피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연애를 해보지 않은 숙맥이라 남녀 관계의 절차를 무시한 돌출행동이었다. 먼저 그녀에게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를 잘 살펴보았어야 하는 것인데. 후배에게는 이미 꽤 깊은 관계에 이른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아리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와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으나, 그 만남들은 모두 내 간절한 마음이 그녀에게 조금치도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 줄 따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종이처럼 자유롭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 이미 한 번 펼쳐버린 내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 채 나는 길을 잃고 마구 헤매었다.
이 당시 그녀는 야간 학교 선생님으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나 역시도 이 당시에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4호선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그녀의 퇴근하는 얼굴이라도 봐야할 것 같아, 내가 내려야 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녀의 집이 있는 <쌍문>역까지 매일같이 갔었다. 그리고는 그녀보다 삼사십 분 먼저 도착해 그녀가 올 열차를 기다렸다. 그녀의 집이 열차 진행 방향으로 보아 앞쪽에 있었으므로, 나는 앞쪽 출구 근처에 놓인 승강장의 의자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이때 그녀를 기다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또 그때의 나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뚜렷한 답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던 책을 의자에 앉아서 계속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내 시선은 책에서 전철이 오고 있을 선로의 왼쪽 끝으로 향했다. 이윽고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토해져 나오면 나는 그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아 헤매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 또 늦은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 혹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사람들. 그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정말 도착할 시간이 되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가 하는 짓이 스토킹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또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는 후배에 대한 미움 등이 뒤섞여서 자리에서 일어나 개찰구 밖으로 나오기가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차마 역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고 지하철 역 구내를 서성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말쑥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를 보면 그가 혹 후배의 애인은 아닌가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이 당시 나는 서너 번쯤 그녀의 얼굴을 먼발치에서나마 보았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을 본 날에는 야릇한 행복감에 젖어들었고, 그녀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삶은 살만한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거짓 위안하기도 했다.
접을 수 없더라도 내 마음을 이제 그만 접어야만 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뚜렷하게 자각하게 되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 부질없는 몸짓에 종막을 알리는 듯한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기다리며 마음의 갈등과 씨름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데 마지막 무렵에 나온 젊은 여성이 출구 쪽으로 몇 걸음 걷는가 하더니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간간히 울음소리도 섞여 나왔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빠져 나간 뒤이긴 했으나 아이도 아닌 다 큰 어른이 그렇게 우는 장면은 몹시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턱대고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보고도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 나도 그녀와 함께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곧장 지하철 내의 화장실로 올라가서 오랜 시간 숨죽여 흐느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이 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나에게 던져준 의미가 금방 와 닿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길로 후배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썼다. 몇 번이나 써보려고 해도 실패만 되풀이했는데 이 날은 의외로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손목이 아픈 것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써 내려갔다. 후배로 향하는 내 마음을 여과 없이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 뒤로도 한 동안 내 마음은 수렁 같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부질없이 후배를 기다리는 일은 차츰 뜸해졌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후배로 향하던 내 외사랑은 단순히 젊은 날의 통과의례의 하나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하철 승강장이라는 의외의 공간에서 홀로 사랑하던 여인을 기다리던 그 많은 시간들은 아프고 쓰라리면서, 부질없이 설레고, 또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순간들인 동시에 내 정신이 조금씩 키를 키워나가던 그러한 시기였다. 그 후로 나는 내 부질없는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게 해 준 그 젊은 여성의 울음이 나에게 던져준 의미가 무엇인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거듭 천착해 보았다. 그 사건의 의미를 몇 마디 말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럼에도 그 사건은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걸 명백히 깨닫게 해 줌과 동시에 나의 부질없는 기다림이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후배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게 했던 듯하다. 더 나아가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서로 감싸줄 수 있을 때 이 삶은 보다 살만 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 또 인간으로서 성숙한다는 것은 삶의 아픔을 꿋꿋이 참고 견뎌나간다는 것이라는 정도는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쌍문역 연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을 써 보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듯, 혹은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를 옮기듯, 담담한 심정으로 써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그래서 질릴 정도로 진부한 것이면서도, 그 당사자인 개개인은 지도 한 장 들고 미지의 땅을 밟아나가는 모험가처럼 낯설고 서투르게 체험해야 하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더욱 쓰라릴 수밖에 없는 외사랑 이야기이다.
이성으로 향하는 사랑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인지, 그 신비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은 지난한 노릇이리라. 그러나, 늘 가까이 지내던 사람인 경우에는 마음 깊은 곳에 내재화되어 있던 감정이 어떤 계기로 인해 우리의 의식에 뚜렷하게 자각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경우 대학교에서 같은 동아리에 있던 한 학번 아래의 여자 후배에 대해 조금씩 좋아하는 감정을 키워왔던 듯한데, 이 후배가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취업을 하자, 갑자기 그녀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치고 말리라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게 되었다. 숫기가 없는 데다 여자 앞에서는 특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여 3학년이 될 때까지 여자와 데이트도 한 번 못해 본 상황에서 후배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 것은 나로서는 여러 번의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단히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의 이 고백은 사실 앞뒤를 살피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연애를 해보지 않은 숙맥이라 남녀 관계의 절차를 무시한 돌출행동이었다. 먼저 그녀에게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를 잘 살펴보았어야 하는 것인데. 후배에게는 이미 꽤 깊은 관계에 이른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아리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와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으나, 그 만남들은 모두 내 간절한 마음이 그녀에게 조금치도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 줄 따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종이처럼 자유롭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 이미 한 번 펼쳐버린 내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 채 나는 길을 잃고 마구 헤매었다.
이 당시 그녀는 야간 학교 선생님으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나 역시도 이 당시에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4호선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그녀의 퇴근하는 얼굴이라도 봐야할 것 같아, 내가 내려야 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녀의 집이 있는 <쌍문>역까지 매일같이 갔었다. 그리고는 그녀보다 삼사십 분 먼저 도착해 그녀가 올 열차를 기다렸다. 그녀의 집이 열차 진행 방향으로 보아 앞쪽에 있었으므로, 나는 앞쪽 출구 근처에 놓인 승강장의 의자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이 때 그녀를 기다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또 그 때의 나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뚜렷한 답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가면서 읽던 책을 의자에 앉아서 계속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내 시선은 책에서 전철이 오고 있을 선로의 왼쪽 끝으로 향했다. 이윽고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토해져 나오면 나는 그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아 헤매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 또 늦은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 혹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사람들. 그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정말 도착할 시간이 되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가 하는 짓이 스토킹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또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는 후배에 대한 미움 등이 뒤섞여서 자리에서 일어나 개찰구 밖으로 나오기가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차마 역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고 지하철 역 구내를 서성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말쑥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를 보면 그가 혹 후배의 애인은 아닌가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이 당시 나는 서너 번 쯤 그녀의 얼굴을 먼발치에서나마 보았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을 본 날에는 야릇한 행복감에 젖어 들었고, 그녀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삶은 살만한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거짓 위안하기도 했다.
접을 수 없더라도 내 마음을 이제 그만 접어야만 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뚜렷하게 자각하게 되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 부질없는 몸짓에 종막을 알리는 듯한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기다리며 마음의 갈등과 씨름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데 마지막 무렵에 나온 젊은 여성이 출구 쪽으로 몇 걸음 걷는가 하더니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간간히 울음소리도 섞여 나왔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빠져 나간 뒤이긴 했으나 아이도 아닌 다 큰 어른이 그렇게 우는 장면은 몹시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턱대고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보고도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 나도 그녀와 함께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곧장 지하철 내의 화장실로 올라가서 오랜 시간 숨죽여 흐느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이 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나에게 던져준 의미가 금방 와 닿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길로 후배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썼다. 몇 번이나 써보려고 해도 실패만 되풀이 했는데 이 날은 의외로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손목이 아픈 것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써 내려갔다. 후배로 향하는 내 마음을 여과 없이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 뒤로도 한 동안 내 마음은 수렁 같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부질없이 후배를 기다리는 일은 차츰 뜸해졌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후배로 향하던 내 외사랑은 단순히 젊은 날의 통과의례의 하나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하철 승강장이라는 의외의 공간에서 홀로 사랑하던 여인을 기다리던 그 많은 시간들은 아프고 쓰라리면서, 부질없이 설레고, 또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순간들인 동시에 내 정신이 조금씩 키를 키워나가던 그러한 시기였다. 그 후로 나는 내 부질없는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그 젊은 여성의 울음이 나에게 던져준 의미가 무엇인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 거듭 천착해 보았다. 그 사건의 의미를 몇 마디 말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럼에도 그 사건은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걸 명백히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나의 부질없는 기다림이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후배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게 했던 듯하다. 더 나아가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서로 감싸줄 수 있을 때 이 삶은 보다 살만 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 또 인간으로서 성숙한다는 것은 삶의 아픔을 꿋꿋이 참고 견뎌나간다는 것이라는 정도는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로부터 또 십 년 쯤 지난 뒤에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회상하며 수줍은 시를 한 편 썼다.
퇴근하는 여자의 잠시의 모습이나 보려
오늘도 사내는 역으로 출근하네
승강장 의자에 앉아
여자가 탄 전철이 도착하길 기다리네
이 가슴떨림이 가을물빛으로 가라앉는 날
그녀로 향하는 내 사랑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리라
사내 다짐을 해보지만
전철이 몇 번씩이나 사람을 토해내어도
여자의 모습 보이지 않네
늦게 퇴근하는 여자의 피로한 얼굴이
자신의 추악한 얼굴로
한층 피곤해 질까 무서워
사내 의자를 떠나네
떠나다 다 못 떠나고
기둥 뒤에 몸 숨기고
개표구를 나올 여자를 다시 기다리네
노란 스웨터에 감색 치마를 즐겨 입는 여자
머리칼 출렁이며 집으로 향하는 여자
세상은 온통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네
중심으로 한 발짝 내어딛지도 못하는 사내
회전목마를 탄 듯 어지러이 맴돌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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