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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니체·푸코

미셸 푸코 -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나남. 1961. [2003]

by 길철현 2018. 5. 20.


[역자 서문]

(8) 내 책은 그저 '허구'일 뿐이다. 작품이란 "영원한 바깥의 흐름"

(9) 침묵으로 내몰린 비이성과 광기에 말과 언어를 돌려주기 위해 "자유의 질식"을 감수하는 경험.

(11) "다르게 사유할" 새로운 가능성. '현재를 말하기'와 다르게 사유하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부되어, 누구나 당연시하는 것, 이를테면 정상적이라고 두루 인정되고 있는 억압적인 것에 대한 투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 "사유는 자체의 역사(과거)를 사유하지만, 이는 사유하는 것(현재)으로부터 해방되고, 마침내 '다르게 사유할'(미래) 수 있기 위해서이다."

(13) 새로운 미래를 예비할 수 있다는 이러한 장점은 철이 없다는 단점, 말하자면 정상적인 것, 규범적인 것을 마구잡이로 위태롭게 만들지 모른다는 단점의 그림자일 것이다.


[해제] 오생근 - 푸코의 [광기의 역사], 혹은 침묵의 고고학

(19) 파농 - 알제리 인들의 정신장애와 광기가 식민지 사회의 폭력적 상황에 기인

(20) [이 책은] 광기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변화되는 과정을 방대한 자료에 의존하면서 끈질기게 추적. 그에게 광기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 중심의 서구문화가 포용하지 않고 배척했던 인간적 인식과 특성의 한 요소. 광인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변화는 바로 침묵 속으로 억압된 광기의 수난사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이성 중심의 사회가 정신과 의사를 대변자로 만들어 광인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아 정상인들의 사회로부터 배제한 과정의 역사이다.

(22) 에라스무스가 광기를 예찬하면서 일깨우고자 한 것은 광기의 힘도 아니고 비이성의 비극적인 어둠도 아니다. 그것은 현자의 이성으로 통제해야 할 세계, 즉 멀리 두고 비판적으로 대상화하여 이성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인간적인 결함인 것이다.

(23) 17세기의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주체는 미칠 수가 없다'는 가설을 세워 광기와 사유를 대립적으로 보고 결국 광기를 이성적 사고가 중심이 된 사회로부터 추방하고 감금하는 '대감호'의 철학적 놀리를 제공 - 푸코

- 광인과 함께 감금된 사람들 중에 동성행위자나 성적 일탈자들이 포함된 것 역시, 광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서' 가정의 윤리와 규범이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예. 

(31) 이성중심적 사회에 의해 억압된 타자, 우리와 전혀 다른 그러한 인간적 실존의 모습과 침묵의 언어를 파악하려는 저자의 철저하고 근본적인 시도.

(33) 데카르트가 감각적 오류의 하나로 본 것을 푸코는 광기의 배제와 감금, 추방의 논리로 파악 - 데리다의 비판.


제1부

제1장 "광인들의 배"

(84) 광기에게 씌워지는 영예의 월계관이 오히려 광기를 구속하는 사슬 - 광기가 어떤 학식보다도 더 분별있게 보인다 할지라도, 광기는 지혜 앞에 굴복해야 할 것인데, 지혜에 대한 광기는 어디까지나 광기이다. 광기는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실과 세계에 대한 결정적 발언이 '아니고', 광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단지 '인간의 비판의식'에만 관련될 뿐이다.

(85) 광기에 대한 비극적이고 우주적인 경험은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비판의식에 의해 은폐된다.

- 니체의 마지막 말, 반 고흐의 마지막 직관이 다시 일깨운 것은 바로 이러한 비극의식이다. 프로이트가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예감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비극의식일 것이다. 즉, 그가 리비도와 죽음 본능의 신화적 싸움으로 상징하고 싶어한 것은 이 의식의 심한 파열상태이다.

(87) 16세기 - 광기는 이성과 관련된 형태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광기와 이성이 영속적으로 가역적 관계를 맺는다. 이 가역적 관계로 인해 모든 광기에 이성이 있고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

(88) 인간의 정신은 그 유한성 때문에 고귀한 빛의 섬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둠의 조각이다. 인간의 한정된 이해력에 의해서는 외양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진실조차 드러나지 않으며, 인간의 광기를 통해서는 사물들의 이면, 사물들의 밤 같은 측면, 사물들의 진실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측면만이 드러난다. 인간은 신에게로 높아짐으로써 단순히 자기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적 약점으로부터 벗어나서 세계의 사물들과 이 사물들의 신적인 본질 사이의 대립을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양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 진실의 모습은 진실의 반영이 아니라 냉혹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92) 이성에 준거해서만 광기가 있을 뿐이지만, 이성의 참모습 전체는 이성에 의해 거부되는 광기를 이성이 한순간 나타나게 한다는 점, 그 결과로 이번에는 이성을 일소하는 광기 속으로 이성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광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즉, 사람들의 광기는 유일하게 존재를 점하는 지고의 이성 앞에서 무에 지나지 않고, 사람들의 허약한 이성에 대해서만 광기가 근본적이므로, 근본적 광기의 심연도 역시 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광기를 고발하지만, 사람들이 마침내 이성에 이를 때, 이성은 현기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이와 같은 현기증 속에서 이성은 침묵하게 마련이므로, 이성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93) 인간조건의 특징 자체인 (이러한) 비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일찍이 인간의 이성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 지혜와 광기의 이 연속적 순환현상을 받아들이고 지혜와 광기의 상호성과 불가능한 분할을 뚜렷이 의식하는 태도에서 확인된다.

(94) 이성은 광기를 맞아들임으로써 은밀하게 광기를 둘러싸고 포위하며, 광기를 의식하고 광기를 위치시킬 수 있다.

(95) 몽테뉴가 정신착란 상태의 타소를 찾아갔을 때 느낀 감정은 연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분한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다른 어떤 다른 감정보다도 감탄에 젖는다. 아마 이성이 극치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이성이 가장 깊은 광기와 한없이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모멸감이 일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이 유쾌하게 고양되는 광기와 특별하고 지고한 미덕의 과시적 표현이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가깝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96) "광기가 섞여 있지 않는 위대한 정신은 없다. . . .  바로 이러한 점에서 현자들과 가장 정직한 시인들은 때때로 이성을 잃고 격정의 상태에 빠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제2장 대감호

(113) 르네상스 시대에 목소리는 풀려 나왔지만 이미 폭력성이 제어된 광기가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상한 강제력에 의해 곧 침묵으로 귀착하게 된다.

(141) 빈곤이 도덕의 지평에서만 지각된 것처럼, 광기도 구빈원의 벽들 사이에서만 발견되는 것.

(153) 칼뱅 -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어리석은 욕심에 소용되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마치 종속되어 있기라고 하기를 바란다.

(157) 17세기 이전에도 광인이 '감금'되는 일은 있었지만, 광인과의 연관성이 인정되는 집단 전체에 광인을 섞어 넣음으로써 광인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때는 17세기이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상상계의 초월적 존재가 광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광기는 무위도식에 대한 윤리적 단죄를 통해 인식되고 또한 노동 공동체로 확고해진 사회의 내재적 존재로 인식된다.  

(160) 수용제도는 17세기의 고유한 제도적 창안물이다. 그것은 중세에 실행될 수 있었던 그러한 유폐와 공통된 측면이 없을 만큼 큰 규모로 확산되었다. 수용은 경제적 조치 겸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창안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수용은 결정적 사건, 말하자면 광기나 가난, 노동 불능, 집단 속으로의 통합 불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지평 위에서 지각되는 계기, 광기가 국가문제와 함께 짜여지기 시작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가난에 부연된 새로운 의미, 노동의 의무에 주어진 중요성, 그리고 노동의 의무에 연결된 모든 가치가 멀리에서 광기의 경험을 결정하고 광기의 의미를 굴절시킨다. 

(164)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기는 환한 대낮에 논의되었다. <리어 왕>을 보라. <돈키호테>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반세기도 안 되어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제3장 비행의 세계

(168) 추방활동은 사회풍경의 일부를 이루는 친숙한 얼굴을 왜곡되게 만들고 새로운 국외자를 산출했으며 그리고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기묘한 형상으로 변모시켰다.

(175) 고전주의 시대에 성병은 질벼이라기보다 부더덕에 훨씬 더 가까웠고, 육체의 병들을 분류하는 기준은 바로 부도덕성이다.

(176) 150년 동안 성병환자는 동일한 울타리 안의 공간에서 미치광이와 함께 지내게 되고, 오랫동안 미치광이에게 어떤 상처자국을 남겨놓게 되는데, 미치광이에게 성병환자와 동일한 운명을 부여하고 미치광이를 성병환자와 동일한 징벌체게 속에 두는 모호한 연관성은 이 상처자국에서 근대인의 의식으로 나타난다.

(180) 모든 광기는 어떤 혼란된 성적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고전주의를 특징짓는 선택을 통해 우리 문화가 성적 욕망을 비이성의 분할선 위에 놓아두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181) 비교적 최근의 시기에 성적 욕망은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서,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당연한 귀결과 점진적 악화의 길을 따라 건강과 질병,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그토록 엄정하게 분할되었다.

(191) 마법은 실제적 범죄의 매개수단일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범죄행위도 신성모독적 활동도 아니다. 이제는 마법에서 신성한 힘이 제거되어 바법에 사악한 의도만이 남는다. 마법은 이제 강정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정신의 환각일 뿐이다.

(195) "나는 절도 있고 신중하며 순결하고 차분한 어떤 사람이 결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리사욕 없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96) 엘베시우스 - "사리를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전체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의 인식은 바보짓일 뿐이며, 우리의 확신은 가공의 이야기일 뿐이다. 요컨대 이 세상 전체는 소극이나 영원한 희극일 뿐이다."

(197) 17세기-18세기 자유사상 - 한편으로는 모든 비이성이 불합리의 모습을 띠는 합리중의를 통해 스스로를 표명하려는 이성의 노력이 진행도리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의 말을 감성의 무분별한 논리 쪽으로 구부러뜨리는 감성의 비이성이 작용할 것이다.

- 이성이 욕망의 노예이자 감성의 하녀로 구실하는 예속상태.

(203) 고전주의 시대의 비이성의 경험 - 그 비이성적 인간들을 그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국외자로 고발하기 위해서는 비이성의 진실을 외면하고 비이성을 사회 세계의 공간에만 가두는 이 최초의 소외가 선행되어야 한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사유가 우리 자신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그 모든 모호한 소회현상의 밑바탕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무엇보다도 어느 날 광인들을 틀림없이 '정신병자'로 지정했을 그러한 사회에서 비이성이 소외되었고 내쫓겼으며 침묵 속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208) 자유사상가, 방탕한 사람, 낭비벽이 심한 사람, 신성 모독자, 광인은 바로 이러한 생활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그들 모두에게는 비이성의 체험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형성하는 아주 개인적이고 각 개인에 따라 다양한 어떤 방식이 있었을 뿐이다.
         

제4장 광기의 경험

(215) 정신이상자 치료 - 1783년 베들리햄의 의사인 T. 먼로가 하원 청문회에서 한 말.

"환자들은 늦어도 5월 말까지 날씨에 맞춰 사혈치료를 받아야 하며, 사혈 뒤에는 몇 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토사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그들에게 하제를 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치료 방법은 예전부터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것이며, 저의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나은 치료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218) 광인 = 죄수 취급

- 다른 정신이상자들처럼 치료받는다는 것은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천 사항을 준수하면서 교정의 체제를 따르고 교육 규정에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221) 광기의 경험은 역설적으로 광기가 수용, 징벌, 교정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다른 경험과 동시대적이다. 문젯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병렬현상이다. 고전주의 세계에서 광인의 지위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이 광인에 대해 가졌던 이해방식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병렬현상일 것이다.

(224) 광인은 의학에 의해 한정되지 않고서도 자신의 개인 왕국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중세가 광인에게 둘러친 윤곽선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광인의 이러한 개체성은 지속적이지도 완전히 굳어 버리지도 않았다. 이 개체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흐트러졌으며 어떤 식으로건 재조직되었다. 중세 말부터 이 개체성은 어떤 의학적 인본주의의 염려대상이 되었다. 어떤 영향 때문일까? 동방과 아랍 사상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아랍세계에서는 광인 전용의 진정한 자선시설이 매우 일찍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227) 중세의 일상생활에 현존하고 중세의 사회 지평에서 친숙한 인물로 떠오르는 광인은 르네상스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고, 이를테면 새롭고 특별한 단위로 재편된다. 광인은 정확히 의학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로부터 고립되면서 모호한 실천의 대상이 된다. 광인은 다른 부류가 아니라 정확히 광인에게만 관련되는 염려와 구호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17세기를 특징짓는 것은 광인의 식별과 이를 통해 광인에 대한 과학적 인식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진전이 다소간 빨랐다는 점이 아니라, 오히려 광인이 더 어렴풋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7세기에 이르러 광인은 이를테면 미분화된 무리 속으로 흡수되었고, 여러 세기 전부터 이미 개별화되어 있던 얼굴의 윤곽선이 희미해졌다. 독일의 나르투름과 에스파냐에서 최초로 나타난 보호소의 광인에 비하면 성병환자, 방탕자, 자유사상가, 동성연애자와 함께 감금된 고전주의 시대의 광인은 개체성의 표지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인은 비이성의 일반적 이해 속으로 사라진다. 이해방식이 기이하게 변하여 섬세한 구별력이 상실되고 인식의 더 둔감한 형태들 쪽으로 퇴보가 일어나는 듯하면 관점이 더 획일적이게 된다. 17세기의 보호소들 한가운데에서 광인은 대혁명 직전에 개혁의 움직임이 태동할 때까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잿빛의 풍경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231) 듀크 : 일반적으로 공포가 광인들을 정연한 행동으로 되돌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 원리라고 믿는다. (18세기말)

(244)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의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전되는 것은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로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감정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선험적 가설'을 형성한다.


제5장 정신이상자들

(251)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주의는 역설적으로 이성이 착란되지는 않으나, 도덕생활이 전혀 바르지 않고 의지가 사악하다는 점에 비추어 인식될 그러한 광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253) 광기와 범죄 사이의 배제관계가 아니라 광기와 범죄를 묶는 내포관계가 엿보인다.

(258) 다른 모든 형태의 오류와 환각이 확실성의 영역을 둘러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의 형태를 해방시킨 반면에, 광기는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유의 표면에 어떤 흔적도 어떤 흠집도 남기지 않았다. 회의의 체계와 진리를 향한 회의의 움직임에서 광기는 실효성이 전혀 없었다.

(260) 19세기에 이성은 자유로운 선택의 공간에서가 아니라 실증적 필요성의 기반 위에서 비이성과 관계를 설정하려고 하게 된다. 그때부터 광기의 거부는 더 이상 윤리적 관점에서의 배제가 아니라 사전에 이미 벌어져 있는 공인된 거리이다.

(262) 이성과 시대를 같이하는 (이러한) 선택과 자유의 경험은 비이성을 따라 단절 없이 전개되는 연속성을 확립하는데, 이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에게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에 따라 풍기문란과 정신이상, 실질적 광기와 가장된 광기, 섬망과 거짓말은 사실상 동일한 곳에서 탄생하고 당연히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265) 비세트르[광인수용소]의 광인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물 같은" 구경거리.

(268) 파스칼 - "나는 정말로 손, 발, 머리가 없는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 수 있다(왜냐하면 우리는 머리가 발보다 더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력 없는 인간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는 없다. 그런 인간은 돌이나 짐승일 것이다.

(271) 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이 비인간적인 무관심은 사실 강박관념과 같다. 이러한 냉혹성은 고대부터, 특히 중세부터 친숙한 낯섦, 위협적 경이, 그리고 은밀한 불안의 중압감을 동물의 세계에 부여해 온 오랜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

(277)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에 대한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분석은 우리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정말로 광기를 그러한 자연의 메커니즘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신이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제의 관행은 광기가 여전히 동물성의 반자연적 난폭성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다.

(281) 광기는 인간성의 가장 낮은 지점인데, 하느님은 강생의 삶 동안 이 지점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속죄되고 구원받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것은 인간에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타락의 최종적 지점이 신의 현존에 의해 찬미된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동안 모든 광기가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교훈이다.

(282)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에서 비이성과 비이성에 관한 추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의 가치 전체는 인간으로 강생한 신의 광기에 있었던 반면에, 고전주의 시대에 강생은 더 이상 광기로 여겨지지 않는다. 광기인 것은 인간이 짐승으로 구현되는 사태인데, 이것은 타락의 마지막 단계로서 인간의 허물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고, 신이 베푸는 호의의 최종적 대상으로서 보편적인 용서와 되찾아진 무구의 상태를 상징한다. 이제부터 광기의 모든 교훈과 광기를 통한 가르침의 힘은 인간성의 하부극한이라는 그 어두운 영역에서, 인간이 자연과 연결되고 최종적인 실총(총애를 잃음)과 절대적 무구의 상태가 함께 있는 바로 거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84) 니체와 프로이트 이래 현대인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허약함의 징후, 비이성의 위협이 나타나는 징후를 읽어낼 수 있으므로 해서 모든 진리에 대한 비판지점을 밑바닥으로부터 찾아내는 반면에, 17세기의 인간은 이성이 최초의 형태로 표현되는 확실성을 사유의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현존에서 발견한다.

(285) 코기토가 절대적인 시작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술궂은 악마가 코기토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2부


(398) 정신이상자는 잠자는 사람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Non aliter evenire insanientibus quam dormientibus)


프로이트 식으로 우리 인간의 정신을 크게 무의식과 의식으로 나누어 볼 때, 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과, 의식이 작동하는 방식(프로이트는 이것을 1차 과정과 2차 과정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기도 하는데)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것이 인간 의식의 밑바탕이자 그 동력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표면화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의식의 논리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매일 밤 꾸게 되는 꿈이라는 현상에서 이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흔적을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인식하는 꿈은 잠재몽(Latent Dream)이라고 부르는 원래의 꿈의 내용을 의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전환시키는 꿈 작업을 거친 다음에 나오는 표현몽(발현몽 Manifest Dream)이기 때문에, 무의식 내용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데도 의식적 논리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아서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꿈이 한 개인이나 사회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완전 상반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죽음'의 상태라고 한다면,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정신 또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다. 비록  



꿈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발현몽(Manifest Dream)으로, 잠자는 동안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흔히 꿈을 꾸었다고 할 때의 꿈 내용입니다. 둘째는 잠재몽(Latent Dream)으로, 무의식에 포함된 생각과 소망으로서, 발현몽을 일으키는 근원을 말합니다. 셋째는, 잠재몽의 내용물이 발현몽으로 전환되는 과정인 꿈 작업(Dream Work)입니다 (하루를 여는 말. 볼 것)


(437) 우울증은 무력의 한계에 이른 광기이다.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비이성이든지 광기이든지 혹은 시선이든지 혹은 소외된 자들이든지 혹은 예외이든지 비정상이든지간에

우리가 설령 보는 눈이 둘이언정 우리의 의식이 그리고 우리의 이성이 더더욱 우리의 정념이 더나아가 우리의 윤리의식이 우리의 인간됨이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뒷받침 해주리라.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세계의 존재들이 주목하는 건 언제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그 이상이 아니니,

우리라는, 우리라는 이 말이 다시는 쓰이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이루는 자들일찌니

 

               <드래곤볼> 손오공의 말 중에서 인용

 

 

1. 영혼의 물질성

 

1.1 볼테르

- We call madness that disease of the organs of the brain which inevitably prevents a man from thinking and acting like others. (Phiosophical Dictionaty, Translator : Theodore Besterman, Penguin Classics; Reprint edition March 6, 1984, p.210)

- 영혼의 순수성을 비판하고, 광인의 광기가 육체현상에 국한된다는 것 역시 비판

- 광인은 뇌에 병이 든 환자 : 영혼의 육체의 상해(傷害)

- 뇌는 영혼의 기관이므로 광기가 감각의 훼손은 아니다. -> 광기의 원인에서 감각기관이 맡는 역할에 관한 의학문제의 포기

- 광기는 물리적 원리의 유기적 손상이거나 비물질적 영혼의 영적 장애이다.

 

1.2 신학자들/결의론자들

- 광인의 영혼은 뒤로 물러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질병 자체에 의해 악으로부터 보호받는다.

- 영혼은 죄를 범할만큼 광기에 빠지지 않는다.

 

1.3 법률가들/재판관들

- 광기란 정신에 병이 든 것이 아닌 일시적 장애일 뿐이다.

- 광인은 비록 수용되어도 법인격(法人格)을 잃지 않는다.

 

* 1.2와 1.3의 종합 : 광인이라해도 영혼은 미치지 않는다.

                     광기의 상태에도 진실의 순간은 있다.

 

1.4 의사들

- Locke의 영향아래 광기의 원인을 감각능력의 장애에서 보았다.

- Sauvages, Voltaire, Tissot의 비판

- Tissot : 영혼과 육체의 근사(近似)한 통일성. "감각은 대뇌의 신경섬유를 흔듦으로써 사유의 동기를 정신에 불러일으키고, 대뇌의 기관은 영혼이 사유에 몰두하는 동안 어느 정도 강한 움직임, 어느 정도 큰 긴장을 내보인다."

 

1.5 결론

- 17세기에서 18세기의 광기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육체의 영혼이 함께 문제되는 것

- Zacchius : 정신이상은 뇌의 병과 추론능력의 훼손에서 기인한다.

 

2. 가까운 원인이라는 선험적 개념

 

2.1 Willis : 동물정기의 이중적 손상 - 1) 정역학적 손상 2) 화학적 변질

             가시적인 모든 것을 계량화

 

* 가까운 원인의 분석을 통해 외부에서 내부로, 지각의 영역에서 설명의 영역으로, 가시적 결과에서 원인의 비가적 작용으로 전이된다. 누구나 보고 만질 수 있는 곳에 머물러 있던 가치들은 촉각과 시각의 한계를 넘어 '사물'로 변화한다.

 

2.2 Sydenham : 정기의 허약함과 무질서는 필연적으로 영혼의 허약함과 무질서를 초래하고, 영혼을 가장 격렬한 정념의 장난감으로 만들며, 그리하여 영혼은 결코 그런 정념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 원인에 입각하여 특성을 평가하는 방식. 즉, 친숙한 인식에서 이미지가 귀납되고, 원인의 이미지에 전가되는 물리적 특성에서 환자의 특이한 증후가 연역된다.

 

2.3  신경섬유의 병리학

- 가까운 원인들을 지칭하는 데 인식의 매체로 소용될 수 있는 물질망 전체는 신경섬유의 생리학 덕분으로 갖추어질 수 있다.

- 광기에 대해 직접적 원인의 구실을 하는 (신경섬유의) 변질은 엄밀하게 말해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만질 수 없고 거의 심적이며 지각의 조직에 내포된 특성일 뿐이다.

- Morgani, Swieten, Hoffmann, Haller

 

2.4  의사들/임상의들

- 아무리 사소한 자극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급격하고 불규칙하며 격렬한 몸짓을 살피고, 긴장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신경의 종류를 관찰한다.(긴장이론)

* 변모된 사물에 대한 인식과 변화된 특성에 대한 인식 사이의 갈등은 18세기의 의학적 사유를 지배 

 

2.5  해부학

- 질병을 인식하는 데에는 질병을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을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광기의 가장 가까운 원인은 영혼에서 가장 가까운 기관, 다시 말해서 신경계와 가능한 한 뇌 자체의 가시적 변질임이 틀림없게 된다.

- 원인의 가까움은 감각의 통일성, 질적 유비관계에서가 아니라 엄밀한 해부학에 의해 확인되는 인접성에서 확보된다.

* 가까운 원인은 17세기에는 동시성과 구조적 유사성을 내포하고, 18세기에는 매개없는 선행성과 직접적 인접성을 내포하기 시작한다.

- Bonet/Lieutaud/Meckel : 대뇌의 상태는 광기에 대한 감각적 해석을 나타내지 않고 그 자체로 병적 현상이자 광기를 유발하는 본질적 변질같은 것.

- Morgani/Cullen : 대뇌의 질량은 광기유발의 특별한 작용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분화되고 이질적인 공간. 이 공간은 해부 및 생리구조를 펼쳐보이고 이러한 공간적 작용을 통해 광기의 다양한 형태 결정.

 

2.6  결론

- 가까운 원인이라는 선험적 개념, 더 정확히 말해서 이 선험적 개념에 내포된 인과관계의 의미가 고전주의 시대에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알 수 있다.

- 육체 전체가 더 이상 가까운 원인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원용되지 않고, 오직 대뇌만이 영혼과 가장 '가까운' 기관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3. 먼 원인이라는 선험적 개념

 

3.1 사실들의 일치와 교차 또는 병적이고 직접적인 변형들만을 묶어내는 인접관계에 의해서만 규정됨.

 

3.2 Etmüller/Whytt/Anonyme/Tissot, Encyclopédie, Gazette salutaire

먼 원인들의 세계는 풍부해지고 새로운 영역들로 퍼지며 셀 수 없는 다수성으로 펼쳐진다. 먼 원인은 갈수록 증대되어 영혼의 세계, 육체의 세계, 자연과 사회의 세계까지 뻗어나간다.

 

3.3  Dufour/Black/Esquirol

먼 원인의 무한한 확장은 이론적 앎에서 실천(수용)으로 넘어간 드문 지식의 하나가 되었고, 보호시설의 관행은 광기의 기원과 관련된 인과연쇄의 다면성과 불균질성인 것.

 

3.4 달의 영향

- 다양한 원인을 한데 모으고 그것들의 내밀한 이로간성을 보장하는 조직화의 원칙을 파악하기 위함.

- 인간의 육체에 달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Dumoulin

- 인간의 육체의 달은 영향을 미친다 : Daquin/Leuret/Guislain

* 달은 대양만큼 무거운 덩어리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대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신경계는 인체의 모든 요소 중에서 대기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달의 운행은 대기를 심하게 교란하는 까닭에, 달은 신경섬유가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에게 강렬하게 작용할 것이다.

* "광기는 절대적으로 신경지로한이므로, 광인의 뇌는 달의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다양한 광도의 달빛을 받는 대기의 영향에 한없이 더 예민하게 마련이다."

- 먼 원인과 광기 사이에 한편으로는 육체의 감각능력,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감지될 수 있는 주위환경이 끼어 들었고, 이에 따라 광기를 중심으로 먼 원인들을 새로운 동질적 전체로 조직하는 준(準)통일성과 귀속체계가 모습을 드러냄.

 

2와 3의 결론

- 가까운 원인들은 특성들의 전위라는 예전의 순환과정을 사라지게 하는 단선적 관계를 영혼과 육체 사이에 설정.

- 먼 원인들은 무수한 확대현상 아래 사실은 새로운 통일성, 육체와 외부세계 사이의 새로운 연결형태를 만들어냄.

- 의학적 광기의 경험은 뇌의 국소적 훼손 그리고 감각능력의 전반적 장애이다.

- 광기의 원인은 뇌의 해부와 동시에 대기의 습도나 계절의 순환 또는 소설 탐독에서 찾을 수 있게 됨.

- 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은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 곧 정념의 양극단일 뿐이다.

 

4. 정념

 

4.1 Sauvages : "정신의 일탈은 오직 우리가 욕망에 맹목적으로 빠져든다는 점, 우리가 정념을 억제할 줄도 완화할 줄도 모른다는 점에서만 기인할 뿐이다." -> 정념이 도덕적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광기의 현상이 정념의 가능성 자체에 속한다는 점이기도 함.

 

4.2 정념은 육체와 영혼의 접속면이었고, 영혼과 육체가 상호적으로 부과하는 한계와 동시에 영혼과 육체의 소통장소이면서 영혼과 육체의 활동성과 수동성이 서로 마주치는 지점이었다.

 

4.3 체액의 의학/정기의 의학 : 정념과 체액의 상관관계. 정념은 정기를 조절하고, 정기는 정념에 따라 배치된다.

 

4.4 18세기에 실천을 좌우하는 고체와 유체의 의학 : 대립적 질적 상태는 육체만큼이나 영혼에 관련되고, 최종적으로 일종의 불분명하고 복합적인 정념의 상황과 연관되며, 이 상황의 공통된 형태들은 관념의 연쇄, 감정의 흐름, 신경섬유의 상태, 유체의 순환에 부과된다.

 

4.5 Sauvages

4.5.1 생생한 정념(예:분노,기쁨,질투)

4.5.2 생기없는 정념(예:두려움, 낙담, 권태, 식욕부진, 기억상실)

* 정념은 영혼과 육체가 영속적 은유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관계에서 특성은 이미 공통적이기 때문에 소통(매개)을 필요로 하지 않고, 표현현상은 그저 영혼과 육체가 언제나 서로의 직접적 표현이기 때문에 원인의 가치를 획득할 필요가 없다. 즉, 정념은 단순한 광기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광기의 전반적 가능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 광기는 육체'와' 영혼의 병일 질병, 뇌의 질환과 영혼의 질환이 동일한 특성, 동일한 기원, 결국 동일한 본질을 지닐 질병.

 

4.6 통일성 : 광기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에 근거를 두면서도 이 통일성으로부터 돌아서고 이 통일성르 다시 문제시하며, 정념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면서도 정념 자체를 가능하게 한 것을 자체의 고유한 움직임에 의해 위태롭게 만든다.

 

4.7 Whytt/Lancisi/Tissot/Sauvages 

- 휘트는 흥분이 영혼 속에서의 충격임과 동시에 신경섬유의 동요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격한 흥분은 정확히 충격이 움직임을 유발하는 것처럼, 광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시인한다.

- 흔히 외부의 사소한 충격에 의해 유발된 감지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는 누적되고 증폭되며 결국 격렬한 경련으로 폭발한다.

- 광기는 정념의 현상 속에서 그리고 정념 자체로부터 출발하여 육체와 동시에 영혼 쪽으로 퍼지는 이러한 이중적 인과관계의 전개 속에서 최초로 생격날 수 있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중단된 정념, 인과관계의 단절, 육체와 영혼의 통일성이 풀린 상태이다.

- 실제로 우울증이 상식밖의 관념에 고착될 때 작용하는 것은 영혼만이 아니라, 대뇌와 동시에 영혼이거나 신경, 신경기관, 그리고 신경섬유와 동시에 영혼이다.

 

4.8 결론

- 광기 속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총체성이 흐트러진다.

 

5. 광기의 담론 - 이미지와 진실

 

- 광기는 이미지에 진실의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 속에서만 시작될 것이다. 광기는 이미지 너머에 있으면서도 이미지 속에 깊이 박혀 있다. 왜냐하면 광기는 오직 이미지를 완전하고 절대적 진실이라고 자발적으로 주장하는 데에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이 대상에 너무 집착한 탓으로 광기에 바져든다."

- 광기의 담론

확신하는 행위, 단언하고 부인하는 행위, 이를테면 이미지를 유지하고 이와 동시에 추론을 따라 이미지를 다듬고 파고들며 팽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부분의 언어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조직하는 담론

 

5.1 Zacchias

- 정신병자에게서 아주 엄밀한 논리의 언사를 발견

- 광기의 궁극적 언어는 이성의 언어, 그러나 이미지의 위세에 둘러싸이고 이미지가 규정하는 가상공간에 한정된 이성의 언어이며, 그리하여 둘 다 이미지의 총체성과 담론의 보편성을, 집요한 특수성이 광기를 빚어내는 그릇된 조직을 형성한다.

 

5.2  Diemerbroek

- 우울증 환자가 악마와 대화하는 것

- 정신착란을 구성하는 일단의 확신과 이미지 전체는 광기이다.

- (광기 혹은 정신착락의) 담론은 자체의 논리에 따라 가장 확고한 믿음을 불러들이게 되어 있고, 서로 연관된 판단과 추론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며, 일종의 활동중인 이성이다. -> 무질서하고 명백한 정신착란 아래 내밀한 정신착락의 영역이 확고하게 놓여 있다.

- 즉 광기를 진실이게 하는 것(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완벽하게 구성된 담론이므로)과 동시에 광기를 정말로 광기이게 하는 것(광기의 고유한 성격이나 광기의 발현 현상이 나타나므로)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5.3  Bienville

- 여자 색광증

- 상상력은 해방되고 욕구는 끊임없이 증대하며 신경섬유는 흥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다. 정신착락은 도덕원칙의 간결한 형태를 띠고서, 삶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경련으로 곧장 이어진다.

 

5.4  결론

(1)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정신착란이 실재한다.

A. 징후로 나타나는 특별한 형태(정신질환과 우울증). 광기의 증후들 가운데 일부를 이루며, 광기의 진실에 내재하는 것으로서 다만 광기의 일부분을 구성할 뿐인 정신착란.

B. 환자 자신에 의해 표명되지 않지만, 질병의 진실을 분명히 밝히려 하는 사람의 눈에는 실재하는 정신착란

(2) 이 암묵적 정신착란은 정신의 모든 변화에 실재한다.

말없는 몸짓, 무언의 난폭한 행위, 기묘한 행동이 문제일 뿐인데도 거기에 정신착란이 지속적으로 잠재되어 있고 특별한 징후들 각각이 광기의 일반적 본질에 결부된다.

(3) 이런 식으로 이해된 담론은 광기의 확장영역 전체를 포괄한다.

고전주의적 의미에서의 광기는 정신이나 육체의 결정된 변화보다는 오히려 손상된 육체, 기묘한 행동과 말 아래 실재한는 '정신착란의 담론'을 가리킨다. * lira / deliro / délire : 이성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



(4) 언어는 광기의 첫 번째 구조이자 마지막 구조이다.

언어는 광기를 구성하는 형식이고, 광기의 성격이 언명되는 모든 순환은 바로 언어에 토대를 두고 있다.

* 우리가 광기에서 표면화하는 것을 살펴본 영혼과 육체사이의 병행관계, 상보성, 직접적 소통의 모든 형태는 이 언어에만 종속되어 있을 뿐이고 이 언어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

* 광기의 모든 순환현상이 시작되고 완결되는 것은 육체와 동시에 영혼, 언어와 동시에 이미지, 문법과 동시에 생리학에 속하는 이 정신착란 속에서이다.

 

6. 꿈과 오류

 

- 광기의 본질적 언어에 직접적 맞닿아 있는 경험은 꿈과 오류이다.

 

6.1 광기의 몽환적 성격

- Du Laurens(1597) : 우울증과 꿈은 기원이 동일할 것이고, 진실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 Zacchias : 꿈과 광기는 본질이 동일한 것. 꿈과 광기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수면의 점진적 전개, 그리고 이러한 전개로 인해 각 단계마다 상상작용의 특성에 초래되는 것과 광기의 형태 사이에서 유비관계는 변함이 없다. "정신이상자는 잠자는 사람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 Pitcairn : "정신착란은 자지 않는 사람들의 꿈이다."

* 고전주의 시대에 정신착란은 이미지와 이미지가 자유롭게 풀려나는 바탕인 몽매한 정신의 분리할 수 없는 전체에만 비교될 뿐이다.

 

6.2  오류

- 꿈은 속이고 혼란으로 이끄는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꿈은 틀린 것이 아니다. 광기가 꿈의 깨어 있는 양태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고 오류 쪽으로 넘어간다.

- 광기는 꿈과 그토록 유사한 이미지에 오류를 구성하는 긍정이나 부정이 덧붙여질 때 존재할 것이다.

-  Encyclopédie : "자신감을 갖고, 자신감에 뒤이어 오는 굳건한 확신 속에서" 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바로 여기에 이른바 미쳤다고 하는 것이 있는 듯하다."

- 광인은 '속임을 당하지'는 않지만 '잘못 생각한다'

 

7. 진실

 

- 광기는 진실과 인간의 관계가 혼란되고 흐려지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 Zacchias : 정신장애는 지성이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성립한다.

- 크리스턴의 정신병의 범주 :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에 따라 갖가지 유형의 광기가 있을 것이다.

A. 혼란한 인식을 현실로 착각하는 정신능력

B. 상상작용의 대상을 현실로 착각하거나 실제의 대상을 틀리게 나타내는 정신의 오류

C. 진실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축소시키는 정신장애의 유형

- Encyclopédie

A. 물리적 진실 : 물질대상과 감각의 올바른 관계에 있고, 이러한 형태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생겨나는 광기의 형태. 예) 환상, 환각, 모든 지각장애를 포함하는 물리세계의 광기

B. 정신적 진실 : 정신의 대상들 사이에서건, 그러한 대상들과 우리 사이에서건 우리가 보는 관계의 올바름에 있는데, 이 관계의 상실에서 기인하는 광기의 형태. 예) 성격, 행동, 정념의 광기

* 정신의 모든 결점, 자만심을 돋우는 모든 환상, 그리고 우리의 모든 정념은 무분별로 치달을 때 진정한 광기가 된다.

 

7.1 무분별

- 준(準)수면의 어둠, 충분한 근거가 없는 확신, 그릇된 판단. 오류때문에 정신착란의 담론은 형태상의 유비관계와 의미의 엄밀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담론일 수 없다.

- 정신착란은 광기의 원리로서, 꿈의 일반적 통사법 중에서 틀린 명제들의 체계이다.

- 광기는 정확히 몽환적인 것과 틀린 것의 접촉지점에 있다. 

- 오류와 함께 광기는 비진실, 그리고 단언과 부정 속에서 자의성을 공유하고, 증가하는 이미지와 다채로운 환상을 꿈에서 빌어온다.

- 잘못된 판단은 진실되거나 실제적인 어떤 것도 단언하지 않으므로 전혀 단언하지 않는 셈이고 전적으로 오류의 비존재 속에 사로잡혀 있다.

- 광기는 직관과 무분별, 상상과 판단, 환상과 언어, 수면과 각성, 낮과 밤을 연결하는데도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 광기는 검토의 대상일 때 몰상식한 무질서인 것으로 드러나지만, 질서 있게 배열된 형상들, 영혼과 육체에서의 엄밀한 작용방식, 확연한 논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된 언어를 보여주기도 한다.

 

8. 현혹된 이성

 

- 현혹된 이성은 태양 쪽으로 눈을 뜨지만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보지 못한다.' * 말브랑슈가 자주 되풀이한 데카르트적 주제, 어떤 것도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 광인은 빛을 보면서, 빛만을 보면서, 그리고 빛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빛을 공백으로, 어둠으로, 무로 본다.

- 진실과 빛이 근본적 관계를 맺고서 고전주의적 이성을 구성하는 것처럼, 정신착란과 현혹은 광기의 본질을 이루는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 비이성과 이성의 관계는 현혹과 눈부신 빛 자체의 관계와 동일하다.

- 고전주의 작가들이 세계로부터 끌어내는 것 : 낮과 밤의 대립을 형성하는 법칙

* 행성의 필연적인 시간이나 계절의 서정적 시간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보편적이지만 절대적으로 분할된 시간 예) 라신의 연극적 시간과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공간

- 모든 변증법과 모든 화해를 배제하고, 따라서 인식의 단절 없는 통일성과 동시에 비극적 삶의 타협 없는 분할에 근거를 제공하는 법칙, 이것은 황혼없는 세계, 어떤 감정의 토로도 서정성에 대한 가벼운 배려도 없는 세계를 지배하고, 모든 것은 각성상태 아니면 꿈, 진실 아니면 어둠, 존재의 빛 아니면, 어둠의 무이게 되어 있다. 이것은 진실을 가능하게 하고 진실을 결정적으로 봉인하는 불가피한 질서, 차분한 분할을 규정한다.

 

9. 장 라신의 <앙드로마크Andromaque>

 

*프랑스 극작가 J.B. 라신운문비극. 5막으로 1667년 초연되었다. 그리스신화에서 소재를 따온 것으로, 그리스어로는 안드로마케라고 한다. 트로이가 멸망한 몇 해 뒤, 트로이의 영웅 엑토르(헥토르)의 미망인 앙드로마크와 그녀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에피르(에페이로스)의 왕 피리스(피로스)의 궁전무대이다. 피리스는 스파르타의 에르미온(헤르미오네)공주약혼했으면서도 앙드로마크를 연모하였고, 앙드로마크의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그리스사자(使者) 오레스트(오레스테스)왕자는 에르미온을 사랑하고 있었다. 앙드로마크는 죽은 남편대한 정절과 아들의 안전을 양립시키기 위해 죽을 각오로 피리스왕의 구혼에 응하지만 질투에 미친 듯한 에르미온은 오레스트로 하여금 왕을 살해하게 한 뒤 자살하였고 오레스트도 미쳐버린다. 이로 말미암아 왕비가 된 앙드로마크정조와 아들의 생명을 지키게 되었다. 주제가 일관되어 있고 사건이 하루 동안에 일어나며 줄거리·시간·장소가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 고전 비극의 삼일치(三一致)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3000어 미만의 일상적인 말로 엮은 아름다운 운문사랑의 정념에 관한 여러 모습을 담아 인간의 숙명을 묘사하고 있다. P. 코르네유의 《르 시드》로 이루어졌던 고전비극을 다시 심리극으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 광기는 어둠의 허망한 환상과 빛의 비존재적 판단 사이의 균형지점을 가리킨다.

 

10. 부정성(不定性)

 

- 수용의 본질은 위험의 축출이 아니다. 수용은 다만 광기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다시 말해서 비존재의 현동화(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한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현실의 흐름 속으로 집어넣는다는 의미. 무정형의 미규정된 광기를 비로소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를 표시할 분이고, 이러한 발현을 나타내면서 무(無)라는 광기의 진실에 광기를 되돌리기 때문에, 광기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 수용은 비이성으로, 다시 말해서 이성이 없는 부정성으로 경험된 광기에 가장 정확히 상응하는 실천이다. 광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인정된다.

- 현상의 표면에서, 그리고 성급한 도덕적 종합(양식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판단의 형식)속에서 수용은 광기의 은밀하고 분명한 구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