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영화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50대인 우리 세대에게는 그 이름 이전에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TV 만화 영화로 친숙하다(주1). 이 작품은 미국 작가인 알렉산더 키(혹은 케이 Alexander Key)가 1970년도에 발표한 공상과학 소설 [엄청난 조류](The Incredible Tide)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2008년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 중 초자기장 무기의 사용으로 지구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2010년도에 태어난 코난이 소년으로 성장한 다음 겪게되는 여러가지 모험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만화를 토대로 1984년에 나온 이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보다 더 먼 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와 함께 환경 오염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어서 오늘 날에 더욱 더 와닿는 면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 영화의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누구라도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이 그의 작품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만화 영화는 어린이 용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장년인 내가 보아도 유치하지 않고, 탄탄한 플롯과 주제 의식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오염된 지구, 부해라는 독성을 띤 곰팡이 숲이 확장되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가운데에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바람계곡'이라는 곳은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해 왔지만, 이내 군사대국의 식민지가 될 위협에 처하게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바람계곡의 공주인 나우시카는 놀라운 비행술과, 자연과 교감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그런 존재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 작품의 큰 주제는 환경 오염의 문제인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적대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가 나우시카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군사대국인 트로메키아와 그 황녀인 크샤나의 입장이다. 지구를 황폐화시킨 '거신병'으로 부해의 거대 곤충인 오무를 파괴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나우시카의 자기 희생으로 자연과 인간의 적대적인 관계는 일단은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놀라운 아이러니는 부해가 인간에겐 치명적인 독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바닥에서는 환경을 오히려 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구라는 행성은 그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안타깝게도 바닷가의 모래 한 알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에게는 그 모래 한 알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구가 우주 전체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우리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이 지구를 오염시켜왔고, 이대로 지속된다면 인류에게는 영화에서처럼 암담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현실이 이 만화 영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상으로 복잡다단하지만, 그럼에도 나우시카가 갖고 있는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 오염 문제가 인류의 초미의 관심사인 현재(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고 있어서 다른 문제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지금이긴 하지만) 이 오래된 영화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주1]
친구들 중에는 이 작품에 열광하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오래전 일이라 그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이 만화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이 만화 영화가 국내에 방영된 시기를 보니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2년도여서 아마도 만화 영화를 보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은하철도 999]는 일요일 아침 시간에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이가 주된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두 작품보다 좀 더 앞서 방영된 작품이 [캔디]인데, 나는 텔레비전 시리즈보다 만화 책에 매료되어 용돈을 쪼개 9권을 모두 구입해서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원작자를 이가라시 유미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가라시 유미코는 만화를 그린 사람이고 원작자는 니기타 게이코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고아인데다가 주근깨 투성이 소녀인데도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그러면서도 상실의 아픔 등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를
흥미롭게 엮어간 작가의 솜씨가 어린 나를 매료시키기엔 충분했다. 이 세 작품이 모두 일본 작품이라는 것은 당시 일본과 우리 나라의 경제적인 격차가 문화 부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의 문화 사업이 얼마나 열악하고 제멋대로였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바벨 2세]라는 만화책이다. 이 작품은 [캔디]처럼 내가 직접 구입해서 본 것인데 나는 저자를 김동명인 줄 알고 있었다. 바벨2세가 세 명의 부하(이 중에 포세이돈은 거대 로보트이다)와 함께 악당 요미와 맞서 싸우는 작품으로 초인적인 힘을 지닌 바벨2세에 매료되었던 하다. 시간이 지나 이 작품이 일본 만화를 베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인터넷을 조사해보니 요코야마 미츠테루라는 사람이 원작자로 나온다. 1970년대 당시 공식적으로는 일본 문화의 수입을 금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적판과 베껴 그리기가 성행했던 것이다.
만화 영화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지금은 희미해지고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자꾸 소환하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만화 영화들이 모두 일본 작품이라면, 우리나라 만화 영화로 아이들의 인기를 끈 최초의 작품은 1976년에 나온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 브이]일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여동생과 여름 방학이 시작할 무렵 이 영화를 보았다. 우리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 이모는 따로 [록키]를 보러간 것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인 훈이와 영희가 제비호를 타고 태권 브이의 머릿부분에 착륙하면 태권 브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악당 로보트들을 멋진 태권도 동작으로 물리치는 것이 신이 났던 듯하다. 그리고, 약방에 감초격으로 등장하는 코믹한 깡통 로봇도 기억이 난다. [로보트 태권 브이]는 1편뿐만 아니라 2편, 3편도 대성공을 거두었고(방학에 맞춰 개봉을 하면 길게 줄을 서서 표를 구입해야 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날개까지 달아서 날지 못하던 약점까지 극복하게 되었다. [로보트 태권 브이]는 일본 텔레비전 만화 영화인 [우주 소년 아톰], [철인 28호], [마징가 Z] 류의 로보트물과 궤를 같이 하는데, 아쉬운 점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표절이라고 할 정도로 [마징가 Z]와 닮았다는 점이다. [철인 28호]는 국내에서 방영되지 않았고, 다른 두 작품도 내가 살던 대구에서는 시청할 수가 없었지만, 만화 책이나 동그란 만화 딱지 등을 통해 접했던 듯하다.
[참고]
로보트 태권브이 76년 김청기 ---록키 (이모는 이 영화를 보았음)
마루치 아라치 1977
황금날개 1,2,3 78년
간첩잡는 똘이 장군
바다의 왕자 마린 보이 69
마징가 제트 72-73/75-76
바벨 2세 74-75(새소년)/ 김동명
철인 28호 56년 / 60년
아톰(지상 최대의 로봇) 51, 52
우주 소년 아톰 동양방송에서 방영
보물섬 82년 창간
미래소년 코난 78년/ 82년 83년
캔디 1977년--80년/83
은하철도 999 81,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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