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깜깜했는데
가만히 서있으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잘려진 사내의 귀가 툭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굉장한 창피를 느꼈다.
걸레를 빨기 위하여
물 가까이에 갔더니 물은
완전한 평형으로 정지해 있었다.
함부로 걸레를 집어 넣었다.
물이 마구 흔들렸다.
사내가 흔들려 보였다.
계단에 걸린 액자엔
얼굴에 붕대를 맨 사내가 정지해 있었다.
걸레를 들고 서 있었다.
모든 불은 꺼지고
귀가 잘린 사내가 붕대를 맨 채 서 있었다.
아무것도 자르지 못한 내가
걸레를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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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자를 고흐와 '걸레를 들고' 있는 화자의 대비가 묘한 긴장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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