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걸레를 들고 -- 이건청

by 길철현 2022. 3. 16.

마당은 깜깜했는데

가만히 서있으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잘려진 사내의 귀가 툭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굉장한 창피를 느꼈다.

걸레를 빨기 위하여

물 가까이에 갔더니 물은 

완전한 평형으로 정지해 있었다.

함부로 걸레를 집어 넣었다.

물이 마구 흔들렸다.

사내가 흔들려 보였다.

 

계단에 걸린 액자엔 

얼굴에 붕대를 맨 사내가 정지해 있었다.

 

걸레를 들고 서 있었다.

모든 불은 꺼지고

귀가 잘린 사내가 붕대를 맨 채 서 있었다.

 

아무것도 자르지 못한 내가 

걸레를 들고 서 있었다. 

 

-----------------------

 

귀를 자를 고흐와 '걸레를 들고' 있는 화자의 대비가 묘한 긴장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