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주 짧은 단상이고, 또 상식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몇 자 적어본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인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프로이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개념 중의 하나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서구 고대 그리스의 신화, 또 그것을 작품화 한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그 용어를 차용해 왔다는 것만 보아도 문학과의 밀접성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정신분석비평은 현재는 예전만한 인기는 아니라하더라도 문학비평에서 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사람마다 그 이해도나 공부의 깊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인문학 쪽에서 프로이트를 언급하는 경우 -- 몇몇 전문가 혹은 대가들을 제외하고는 -- 프로이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단편적인 지식들을 나열하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다. 그것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의 번역만 보아도 잘 드러나는 일인데, 다수의 인문학자들이 참여한 그 번역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오역들이 있다.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정신과 의사라고 해도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그 분이 한 번역이 본인이 한 것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만큼 틀린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인문학의 장점이라면 프로이트를 지식의 지형 내에 자리매김을 하고, 좀 더 총체적인 시각에서 그를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리라(이것도 국내에서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정신의학 쪽에서의 프로이트의 접근은 아무래도 임상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확성을 띤다(이것도 그냥 나의 좁은 견해이거나, 위에서 이야기 한 예에서 보듯이 한낱 기대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으나)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그러한 접근이 정신의학 내부에만 국한된 듯한 답답함을 줄 때도 많다.
깊으면서도 넓게 안다는 것은 현대의 복잡성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생각해 볼 때, 그냥 이상적인 헛구호일 수도 있으리라. 또 나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둘 다의 부족한 면을 생각해 볼 때, 그 책임을 타인에게만 전가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이야기의 결론이 애초에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긴 한데, 국내에서의 프로이트의 수용이나 이해의 폭의 확장은 프로이트의 용어들이 좀 더 통일적으로 정착이 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일례로 Fehlleistung(parapraxis)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실수, 실착, 실책 행위, 착오 등 온갖 용어들이 사용되는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는 국내 저자의 저술이든 아니면 번역이든 역량 있는 분들이 좋은 책을 좀 더 많이 내는 것이리라.
말들의 백가쟁명의 시기인 현대에, 그러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삶의 길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프로이트에 한쪽 어깨를 기대려 하지만, 프로이트는 가도 가도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언제나 손닿지 않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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