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남지장사(南地藏寺)는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최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684년(신라 신문왕 4)에 양개 스님이 창건하였다. 신라 때에는 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유지들도 시주를 많이 하여 사세가 매우 컸다. 한때는 8개 암자를 거느렸고 수도하는 승려만도 3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 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남지장사를 승병의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왜군에게 점령되어 불에 탔다. 1653년(효종 4) 인혜(印惠)가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 모계(慕溪)와 풍흡(豊洽)이 중창하였다. 모계가 중창한 뒤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北地藏寺)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바꿨다고 한다. 그 전의 절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1940년대에 신원(信元)이 중수한 이후 꾸준히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대한민국구석구석)
[탐방기] 대구 수성구로의 편입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창면, 그 중에서도 이 남지장사가 자리한 우록리는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먼저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침공하였으나 부하들을 이끌고 투항한 사야가(김충선)이 임진왜란 후 정착한 곳(김충선 편 참조)이며, 또 산으로 길게 뻗은 길 끝에는 백록마을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김충선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 남지장사 역시도 최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차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 이 지역을 찾았을 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또 내 마음이 아주 힘들어 할 때 큰여동생이 나를 위로하느라 이곳까지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장마가 시작되고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또 다시 비가 쏟아질 듯 흐린 날 아침에 이곳을 찾았다. 남지장사는 규모가 크지 않고 유물도 많지는 않으나,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뭔가가 있었다. 이번에 찾았을 때에는 뜰에 위치한 오래된 벚나무에 특히 눈이 갔다. 그리고, 내친 김에 남지장사에 딸린 두 암자, 청련암과 백련암도 찾아보았다.
대웅전 안에 있는 자그마한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또한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안내문에도 나와 있었지만 스님이 대부분의 불상이 석조라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금칠이 되어 있어서 나는 여태껏 그 재료를 금동 등 금속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대구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위치하였으며 석가여래상을 보살상들보다 크게 조성하여 본존불임을 강조하였다. 삼존상 모두 고개를 약간 내민 자세로 결가부좌하였는데 온화한 인상과 석재이지만 목조와 같은 부드러운 조형미 등이 특징적이다. 이 삼존상의 고개를 내민 자세, 짧은 신체비례와 높은 무릎, 방형 얼굴, 착의법 등에서 일반적인 조선후기 불석제(佛石製)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석재이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표현과 옷주름, 보살상 천의의 옷주름과 띠매듭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제작시기는 비례와 착의법 등에서 조선시대 17세기 후반기 불상으로 추정되며 경상도지역에서 활동하며 불석제 불상을 조형한 승일 계보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 중후반경 경상도지역에 유행했던 불석제 불상으로 기존 알려진 조각승들과 차별되는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후기 불교조각 연구와 불석제 불상,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학술자료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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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대구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1659년 조각승 승호(勝湖)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고개를 내민 자세, 방형 얼굴, 변형통견식 착의법 등에서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과 함께 짧은 신체비례, 눈꼬리가 긴 눈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승호는 17세기 후반기 경상도지역에서 불석제(佛石製)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으로 유명한데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그가 처음 수조각승이 되어 만든 작품으로 밝혀진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승호는 1640년 차화승(次畵僧)으로 등장한 이래 1670∼80년대에 이르러 수화승(首畵僧)으로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남지장사 불상을 통해 20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이 불상은 제작시기, 제작자, 조성 사찰 등이 명확하고 17세기 불석제 불상제작에 두각을 나타낸 승호의 조형성이 드러나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양식적 변천과 조각승 승호 계보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소개] 운계당 대선사 휘축인 송덕비(雲溪堂大禪師諱竺寅頌德碑), 모계당 대선사 휘취례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禮頌德碑)」, 경운당 대선사 휘영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등 남지장사 비석군(南地藏寺碑石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청련암
[소개] 남지장사 청련암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최정산(最頂山)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남지장사 부속 암자이다.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남지장사 대웅전 동쪽에 위치하는데, 전면에 매우 높은 석축을 조성한 관계로 정면에서 인법당(因法堂)으로 바로 출입하기가 곤란하여 우측으로 문을 낸 후 남서향으로 법당을 앉혔다. 그리고 배면에 낮게 축대를 만들고 삼성각을 남향으로 축을 틀어 배치하였다. 법당인 인법당에는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남지장사 청련암의 중심 건물로 법당의 기능과 요사(寮舍)의 기능이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평면의 구성이 사찰 건축의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리 가운데 3칸의 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이 이어 붙어 있고 우측으로 부엌이 자리한다. 전후에는 툇간을 내고 좌측 전면으로 방 1칸과 마루 1칸을 덧대어 일견 민가의 사랑채를 연상시키며, 부엌 뒤편으로도 방 2칸을 더 두었다. 또한 우측 반 측면에 퇴를 내면서 전면 쪽으로 가림 벽을 설치하여 시선을 차단하였다.
법당이 있는 건물은 6칸의 정면 건물 오른쪽 뒤와 왼쪽 앞으로 각각 3칸 건물을 이어 지어 평면 배치가 특이하다. 구조는 소박하면서 부분적으로 고식 수법(古式手法)이 남아 있다. 중앙은 정면 3칸, 측면 2칸, 즉 6칸 규모의 법당인데 구들을 들이고 천장이 평평하다. 여느 절의 요사나 강당 같아 부엌 쪽으로 받침이 있고 그 반대쪽으로 2칸의 구들이 달렸다. 받침이 있는 부엌은 넓이가 4칸이나 되는 넓은 공간이다. 건물의 양식은 무익공 소로 수장(小櫨修粧)으로 정면과 배면 밖 둘레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동자 대공을 세운 삼량 구조에 정자형·팔작형·맞배형을 혼합하여 지붕을 꾸몄다.
삼성각은 전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3면은 두꺼운 벽으로 폐쇄하였으며 전면에만 출입문을 두었다. 어간(御間)은 궁 널을 끼운 쌍여닫이 띠살문을 설치하고 양 협간은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최근에 보수하여 부분적으로 부재들이 교체되었고 모로 단청[목부재의 끝부분에만 머리 초 문양을 장식]을 올린 흔적이 역력하다. 또 홑처마 맞배지붕에 풍판(風板)을 두었으나, 건립 연대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지장사 청련암 [南地藏寺 靑蓮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내친 걸음에 청련암으로 향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청련암은 아쉽게도 복원 공사를 하다가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 남지장사로 다시 돌아와
- 백련암
차를 몰고 돌아나오는 길에 백련암에도 들렀다. 스님 한 분이 비가 와서 찍을 게 없다고 다소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관음전을 주전으로 한 아담한 크기의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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