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는 시마바라(島原 도원). 시마바라 성을 볼 생각으로 이번에는 내비에다 정확하게 'Shimabara Castle'이라고 치고 출발한 뒤, 니타 고개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서쪽 운젠 앞바다로 해가 붉게 저물면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국도에서 현도로, 그다음 시마바라 시내로 들어서서 좌회전을 하니 시마바라 성이 보였다. 시마바라 성 자체는 조명을 켜두었으나 입구는 컴컴한 것이 이미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음력 십오일인지 하늘에는 둥근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상황을 살펴보려 해도 주차할 곳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불법 주차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시마바라 성을 중심으로 좁은 도로를 두어 바퀴 돌다 과감하게 입구에 차를 세우고 확인을 해보니 예상대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외관뿐이긴 하지만 성도 보았겠다 이 소도시에 특별히 나를 당기는 것도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차를 렌트한 직후에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다른 여유가 없었는데, 별생각 없이 찾아간 운젠에서 운 좋게도 예쁜 저수지며, 온천 지옥이며, 헤이세이 신잔까지 많은 것을 구경하고, 다시 이곳 시마바라에 와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제는 대략적인 일정이라고 짜고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골목에다 차를 멈추고 안내 책자와 인터넷을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긴린코 호수와 아소산, 두 곳은 꼭 찾는다고 한다면, 동쪽 해안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러려면 오늘밤에는 일단 사가(佐賀 좌가) 시에서 일박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후, 내비에 "사가 역"이라고 치고는 다시 차를 몰았다.
아리아케 해를 오른편에 두고 251번 국도를 따라 차를 몰고 나간다는 게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경험이겠지만, 이미 주위는 컴컴해진 뒤라 어디가 어딘지 아무런 감각이 없는 채로 계속 전진해 나갔다. 이날 저녁의 운전 중에서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중간에 우리나라 시화방조제에 비견할 정도로 엄청나게 긴 방조제를 지난 것이었다.
한적한 도로 공터에 차를 세운 뒤 작은 볼일도 보고, 둥근달이 중천에 떠 있는 잔잔한 밤바다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운전을 하는 내내 과속 탐지기가 보이지 않았고, 내비에 뜨지도 않았다. 제한속도는 40, 50, 60km 등으로 고속도로가 아닌 경우에는 우리의 국도처럼 80km로 운전할 수 있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운전이 좀 익숙해지면서 속도를 조금씩 높였는데, 그래도 제한속도보다 10km 이상 운전하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사가 시내에 도착한 시각은 9시 10분 정도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었다.
이제 '싸고 괜찮은' 숙소와 늦은 저녁이라는 두 가지 난제가 남아 있었다. 역 주변 도로를 두어 바퀴 돌다가, 한국에서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될 듯하여 내비에다 "호텔"이라고 쳤더니, 가까운 곳에 비즈니스호텔이 있었다. 골목 안쪽 옥상 간판에서 붉은빛을 내고 있는 곳인 듯했다. 골목 안이라 조용할 듯하여 들어갔는데, 골목이 경차인 내 렌터카가 들어가기에도 빠듯했다. 그러다가, 전봇대에 사이드미러가 부딪히는 불상사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하여 호텔 앞에 있는 주차 공간에 또 힘겹게 후진해서 차를 세우고는, 사이드미러를 확인해 보니 속도를 그렇게 내지 않은 데다 끝부분이 부딪혔는지 별다른 생채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접수부엔 아무도 없었다. 앞에 종이 있어서 그걸 울리려고 하는데,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안쪽에서 나왔다. 이분이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는데, "혼자"(이치?)라고 하니까, 종이에다 '4,200'이라고 썼다. 내가 다시 "카드"라고 하니, 이번에는 종이에다 '4,400'이라고 썼다. 현금으로 계산을 한 다음 키를 받아 들고 2층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자그만 했지만 그런대로 깔끔했다. 4만 원이 채 안 되는 숙소이니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숙소 문제를 의외로 쉽게 해결했으니 다음은 식사였다. 도로로 나오자 마침 길 건너편에 식당이 하나 보여 들어가 보았는데 '면 요리 전문점'인 듯하여 나오고 말았다. 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술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식당들은 문을 거의 닫은 듯했고, 사가라는 도시가 현청 소재지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곳도 아닌 듯했다. 역 앞으로도 가보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결국 만만한 KFC로 들어가 전날 저녁에 먹었던, 할인판매 중인 세 조각짜리를 구입했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와 빵, 생수 등도 구입해 호텔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채널이 셋 뿐이었고 당연하게도 모두 일본 방송이었다. 짠 치킨에다 캔맥주를 들이키며 허기를 달랬다. 그런데, 한 채널 뉴스에서 이태원 거리를 보여주며 기자가 뭐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태원 참사' 1주년이었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라, 처음에 얼핏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오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나중에 사고가 난 골목을 직접 찾아가 보았을 때에도 그렇게 좁지 않은 골목에서 그 많은 사람이 압사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일한 생각이 낳은, 예상치 못한 사고. 다치고 죽은 사람들과 그 후유증으로 자살한 사람들, 이들의 지인과 가족들. 또, 머리가 착잡했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길고 긴 하루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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