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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너의 집

by 길철현 2024. 9. 19.

지하철 아가리를 벗어나

핫도그 아줌마를 지나고

귤 트럭이 진을 친 곳에서

살짝 왼쪽으로 꼬부라지면

만화 가게 -- 누구에게나 빌려 드립니다

다시 네 갈래 길에서

식료품 가게를 표적으로 오른쪽으로 돌면

대문 큰 집, 하나 둘

열 걸음, 스무 걸음,

왼편으로 보이는 좁다란 골목

그 골목 왼쪽 첫 번째 집,

너의 집 전등들은 지칠 줄도 모르고

장독대엔 사이좋은 장독들 하나, 둘, 셋

무서워, 담 위로 뾰족 보초 선 쇠창살 무서워

침침한 가로등 켜진 전봇대에 기대면

눈 감을 것도 없이 네 얼굴 나를 채우고

하나 둘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훌라훌라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찾겠

 

굳게 닫힌 초록 대문

그 대문에 내 울음을 심는다

반쯤 심다가 돌아선다

더 굳게 입 다물고 돌아선다

 

                         (19910102)

                         (19980524)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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