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이영광
마른 아랫배가 쩍쩍 갈라지자 저수지는
물 빠진 빈 그릇이 되었다
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이 되었다
울음은, 풍매화 홀씨들을 공중에 날려 보내는
텅 빈 바람으로 떠났다가
돌아와 꽃대궁을 흔드는 고요로 머물다가
마른 땅 밑 먼 수맥을 아슬히 울린다
저 물 빠진 황야로 걸어 들어가
한나절을 파헤치던 사람들과
주둥이를 빼고 목메다 간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지는 약손이 된다
작은 울음들이 목청껏 울고 간 먼 골짜기까지가
울음의 커다란 입이다
챙챙거리는 소리들이 간신히 잠든 지층까지가
울음이 고요히 타는 입이다
나는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
귀기울여본다
큰 울음은 작은 울음들로 빽빽하다
큰 울음은 오늘도 울음이 없다
이영광. [그늘과 사귀다]. 랜덤하우스. 2007. 78-79.
- 시인은 왜 하필이면 물이 다 빠진 저수지를 시의 소재로 택했을까? 그리고, 거기에서 왜 들리지 않는 울음을 듣고 있을까? 메마른 저수지처럼 삶의 팍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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