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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

[내재율 제3집] 홍순오(86) -- 거리에서

by 길철현 2024. 11. 20.

거리에서

                    홍순오(86)

 

지금쯤은

흰 페인트로 덧칠된 이 도시를

태양이 작열할 터인데.

콩알만한 푸르름이 그리워

어설픈 몸짓으로 거리에 서면

빨강, 파랑 구별없이

질주하는 온갖 차량들.

두 사람 굳은 악수

춘향전 한 대목으로 피어오르는 고속터미널.

떨어져 있으면 눈물이고 이별일지라도

오늘은 웃음이고 사랑이자.

시월 플라타너스 잎처럼 떠다니는

조각난 노트장

누구 집 처녀가 밤새 써놓고 아침이면

보내지 못한 사연일까

내가 받아줄까.

찡그리던 하늘은 마침내 폭탄을 내리뿌리고

아직 미완으로 남은 책상 구석 고이 간직한

시 한편을 채워 줄 시어 인양

단 하나의 폭탄도 빼지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방패하나 가지지 않은 여름 거리엔

내일 아침이면 수평너머로 부터

파닥파닥 흰 날개를 저으며 올 한줄 시를 기다리는

사람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