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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마지막 순간

by 길철현 2025. 2. 2.

친구와 길 위에 서 있었다. 전날 탁구 시합에서 짜릿하게 역전 우승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늘에 둥그렇게 떠 있던 태양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길게 흘러 내리더니 두 조각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끝이로군, 이렇게 끝나는군. 중얼거리며, 집에 빨리 전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광속으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과부하에 걸린 전화는 먹통이었다. 벌써 몇 초가 지났으니, 8분 정도가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었다. 쪼개진 태양은 점점 더 멀어지고. 허망하군. 계획한 일이 무척이나 많은데. 무릎을 꿇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라도 드릴까? 이내 죽음이 닥쳐올 거라는 의식과 아무 일도 없는 현재 상황의 괴리가 나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이리저리 뛰기도 하고, 울부 짖기도 하고, 얼이 빠진 모습. 혼돈. 하지만 이 또한 곧 사라지리라. 

 

(이건 좀 착각이다. 쪼개지는 현상은 이미 8분 19초 전에 일어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결과도 덩달아 일어났을 것이다. 어쨌거나 꿈에서는 정말로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정말 곧 죽는다고 생각을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니 아무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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