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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102

고호 생각 -- 김현숙 순한 짝 하나 만나지 못했다 척박한 땅에 와서 생각으로 무거워진 해바라기나 측백을 심어놓고 이글거리는 태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목숨껏 회오리쳤다 시정 잡배들에 뜯긴 흠집 투성이의 귀는 자르고 스스로의 소리를 찾아 떠난, 자기에게 더 가까이 돌아갔던 사람 신이여 마주한 뜨거움과 외로움과 가난을 정말이지 어느 것 하나 거부할 수 없었던 그를 오로지 그림으로만 말하게 한 신이여 2022. 3. 8.
반 고호 있는 그림 -- 권명옥 광부들의 곤비한 잠이 날마다 지상으로 눈을 부르던, 고호의 볼리나아쥬의 섣달 그믐께, 또는 내 꿈 장성읍(長省邑) 홍암동 산번지 일대 제칠일안식교회 종루 뒤켠, 한 달에 한두 번 밤에 머리에 눈을 쓰고 촛불 켜들고 방문하던 창녀 유자말고는 편지도 없던, 온 밤내 그분은 신들메를 했다는 이를 뒤쫓다 혼자 깨어나면 아침마다 거짓말같이 신들메를 한 광부들이 내 방 문앞으로 달려들어 한번씩 마당의 눈을 밟아보고는 지나가곤 했다. 반 고호의 자화상 품고서 낮잠 들던, 해가 떠도 눈이 내리던, 2022. 3. 8.
해울림 -- 반 고호의 황색 -- 권명옥 누가 광야로 나아와 꿇어 절하며 따의 울음을 해에 매더니 해에게서 되돌아오는 따의 울음을 또 누가 거두어 광야로 나아가리라 2022. 3. 8.
어느 날의 이명 -- 나도 귀르 자르고 싶던 날 -- 김혜순 그 목소리를 담고 마음은 나를 쫓아 다녔다, 새처럼 까옥거리면서 방심하고 있을 때 까막새는 덮였다, 저주처럼 서늘하게, 그 다음 두 귀를 파먹고 그 속에 집 지었다 부리를 비벼대면서 아아아아아아아 세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꺼풀 벗겨져서 속살이 지천으로 마구 익었다. 소리란 소리가 모두 증발했다. 귀를 자르고 싶던 그 날. [주] 아아아아아아아 : 글자 크기가 뒤로갈 수록 줄어듬 2022.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