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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104

슬픔 -- 수반의 무우꽃 -- 박순옥 밑동 잘려 나간 채 무우꽃이 핀다 잠깐의 휴식으로 지기 위해 흙이 아니어도 일구어지는 미동의 뿌리 잠들지 못하는 수반 한며칠 말갛게 비치는 빈혈로 서서 채마밭에서나 피어날 꽃이 핀다 감미로운 이름으로 지기 위해 수반 : 바닥이 얕고 평평한, 사기로 만든 네모난 그릇 2022. 3. 9.
인호(印號) A -- 박순옥 불길 속에서도 타지않는 싸이프러스 얼음이 탄다 귀만 커져가는 침묵이다 불에 데여 깊어진 동공에 이른 골바람 북서풍의 혼돈 기류가 노오란 지붕으로 몰아친다 꿈으로 예감하고 싶지 않은 하루를 망가진 시력으로 바라본다 잠자는 그대의 방에 점화하려고 해를 본다 인호 : 성세, 견진, 신품 등의 성사로 받은, 보이는 않는 표징 2022. 3. 9.
감옥 속의 산책 -- 박세현 일렬 횡대로 천천히 걸을 것 더 더 입은 열지 말고 누구야 누구 이를 잡지 말 것 벽을 쳐다보지 말 것 한 숨 쉬지 말 것 창밖을 보지 말 것 보지 말라니까 말 것 말 것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 것 자신의 죄만을 생각할 것 내가 죽일 놈이지 옳지 잘한다 억울한 누명을 생각할 것 틈틈이 억울하게 생가할 것 빌어먹을! 하고 1분마다 독백할 것 그러나 그 무수한 이갈림에도 불구하고 신의 지시없이는 맹세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 것 2022. 3. 9.
슬픔, 아니리라 -- 박세현 삭탈당한 여인을 그려놓고 빈센트 반 고호는 이라고 적어 넣었다. 슬픔이라는 외국어 표기가 그녀의 살을 향해 꼬 물꼬물 기어가는 과정을 나는 보았다. 육체의 형식에서 빠져나 온 삶의 광채가 나의 살깣에 붙어 치사하게 연명하고 있음도 보았다. 나는 그 여인에게 민중이라 이름붙였다가 칼끝으로 긁 어내고 수정했다. 그녀의 본명은 슬픔이 아니다. 가령 자궁이 라든가 부드러운 탐욕, 애인, 크레딧 카드, 가령 프라이드, 반지, 가령, 무도회에의 권유, 정관수술한 남편, 미래, 가령 그런 것들 과 사돈의 팔촌이라서 그녀의 이름이 슬픔으로 기록된 것은 아 니리라. 우리가 그저 슬픔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 슬픔은 그리 하여 그녀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거풀 위에 얹혀 있음 을 한 서양화가는 말한다. 2022.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