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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104

아를르로부터의 편지 -- 반 고호에게 -- 박찬 이까짓 귀 한짝쯤 없으면 어때 아를르의 따사로운 햇빛만 있다면야 허튼소리쯤 그냥 흘려버려도 그만 싱그런 바람소리만 쏙쏙 잘 들려오는구나 동생아 아를르 여인들의 반짝이는 웃음소리만 잘도 들려오는구나 지금 귓가에 흘러내리는 이 끈적한 피 이 피의 의미를 너는 알겠느냐 눈부시게 펼쳐진 보리밭 너머 과수원의 복사꽃들 한들거리고 어둡던 청동빛 기억들도 이쯤에 와선 보리빛 진한 구름으로 피어나느니 하늘을 찌르는 높푸른 가지 새로 햇볕만 맴맴 맴도는구나 들판도 성난 파도처럼 물결치는구나 동생아 이까짓 귀 한쪽이사 없으면 어때 하얀 면도날에 묻어 빛나는 핏빛 그 붉은 피의 빛깔의 의미를 너는 알겠느냐 상종못할 놈들의 허튼 소리쯤은 그냥 흘려버려야 하느니 바람 구름 별 해------ 숨차게 맴도는 소용돌이 속으로 이제 .. 2022. 3. 9.
설경 -- 고호의 <자화상>에게 -- 이제하 지금 우리들이 보는 것은, 머리처럼 뜯겨서 피도 없이 겹쌓이는 백의 쥐죽은 듯한 저 종소리뿐이다 그대 몫에서 그만큼만 떼내라, 그리고 배고픈 귀는 내 쪽으로 돌려다오 그 한치 높이의 천상에서는 귀신같은 여뀌풀도 뻗고 있다, 그것도 잘라내라, 그리고 쓸쓸한 귀만은 내 쪽으로 돌려다오 2022. 3. 9.
구두 4 -- 박의상 무거운 것이 제 한 몸이라고 제 한 몸 같은 이 한 세상이라고 구두는 무거운 구두는 나의 친구는 가벼워지기 위해 걸었다 쓰러질 때까지 걸었다. 2022. 3. 9.
구두 1 -- 반 고호의 그림 <구두> -- 박의상 구두를 벗고 반 고호는 물었을 것이다 너는 어디를 그렇게 쏘다녔느냐고 무엇을 그렇게 많이 걷어차고 어디에 그렇게 많이 치이고 왜 그렇게 많이 닳고 해지고 터졌느냐고 그는 구두 한 켤레를 그리면서 그 질문들을 그리면서 그리다가 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헤매어야 다시 왔지 왔느냐고 그냥 터덜 터덜 떠도는 어떤 목적지를 모르는 너도 다시 지금 만난 네가 목적지가 된 그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웃다가 그는 구두를 벗고 정중히 그 이마에 입맞추고 이젠 맨몸으로라도 맨발로라도 저를 이끌고 한세상 또 어디로 떠나려고 했을 것이다. 2022.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