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104 자화상 부근 -- 문정희 입에 문 파이프에서 진종일 가마귀들이 날아오르는 오후 조요로운 나무의자 위로 노오란 죽음이 내려 앉는 고호의 방을 두드린다. 창문처럼 걸려 있는 자화상 속에 삼나무들은 아름다운 고뇌를 울부짖다가 그대로 하나의 정물이 되는데 날 흔들지마! 날 흔들지마! 바늘 끝에 서 있는 슬픈 눈으로 고호는 내게 한 잔의 독주를 권하며 먼 이별을 예비시킨다. 2022. 3. 8. 자살자를 위하여 -- 마광수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 2022. 3. 8. 빈센트 반 고호의 죽음 -- 마광수 새가 한 마리 하늘로 올라간다. 저 새를 쏘자. 쏘자. 새는 땅으로 떨어진다. 새는 검은 빛. 총탄은 단 한발의 소비. 육식성동물들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고목은 언 제나 하늘로 오르려하는 습성. 2022. 3. 8.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보리밭 -- 김현숙 죽어서는 물이 되리 그리하여 전생의 불을 끄리 마지막 지니고 갈 풍경이 있다면 아를르의 보리밭 소용돌이 치는 그리움을 그마저 활활 태워서 흩어버리고 가리라 어두워오는 세상을 빠져나가며 밭둑 근어에서 단 한발에 걸어보리라 이겨본 적이 없는 삶의 독을 쏘아 넘어뜨리리라 날아오르는 새여 내가 기른 까마귀떼여 버림받지 않는 다음 세상으로 가자. 2022. 3. 8.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