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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104

귀자르기 -- 고호와 함께 -- 신진 양말을 벗으면 고손내 난다 좌심방서 쏘아대는 신선한 석탄향 코끝을 대면 드러나는 귀가 부끄럽다 내게 먹을 것 주고 사랑을 주는 테오도르, 나의 형제여 너는 모르리 사랑을 아직 모르리 사랑이라면 나를 치리라 매달고 나를 치리라 내 삶이 파랗게 썩어 밀내로 터질 때까지. 보리나주 탄광의 굶주린 주민의 굶주린 눈 굶주린 갱도의 굶주린 곡괭이의 굶주린 비명 그렇구나, 함께 벗고 주리던 사랑이 매몰된 갱도 두려워하며 떨며 나를 치던 그 눈빛 아름답구나. 저녁답 별이 하나 둘 깜박이며 잠시 그치는 연주 잠시에 오랜 절망이 반음으로 떠오르고 어중간한 음계에서 사정없이 허물벗는 맨몸을 보았느냐. 사랑의 마른버즘 불에 대어 뻘겋게 타오르는 고통의 축제일을 보았느냐. 여기는 어둠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아를르 화원 잘 씻긴.. 2022. 3. 15.
해바라기송 -- 성춘복 아주 잘 빚은 조선 항아리 하나 손때도 지워지지 않은 어리쑥한 흙손의 큰 주둥이에 해가 하나 떠오른다 쪽빛 하늘 하얀 구름 무늬살의 바람 휘저으며 빨려드는 불의 바다 땅 속 열기로 풍차에 휘감아 올리는 몇 마리 검정새 혹은 연으로 띄워올리는 죽음의 불길 그 땅의 주인이 이룩한 해바라기꽃. 2022. 3. 15.
반 고호 미술관을 찾아가는 법 -- 성춘복 암스텔담 중앙역에서 몇 발자국 옆으로 비켜선 저쯤 쬐그만 두 어깨에 간신히 별 두 개를 올려 그 무게만도 지탱키 어려운 성니콜라이 호텔의 구석방 층계를 딛고 이 다락방을 벗어나 난 어엿한 그곳 사람으로 전차를 기다린다 5번과 17번을 떠나보낸 다음 덜커덩거리며 다가서는 2번전차에 올라 거스름돈도 차분히 받아쥐고 라이드 스트라드 네 개의 흙탕물이 골로 트인 운하를 내려다 보다가 뮤즘 플라인의 한 모서리 급히 두 발을 땅에 던진다 큼직한 유리창 앞 검정의 두 사람 반바지에 런닝셔츠 차림의 앳된 처녀애들 등 뒤에 붙어 나도 차례로 넓은 마루에 나선다 벽엔 Vincent Van Gogh 그 쯤의 화가가 날 기다림직도 한 그러나 글자들만 소복히 쌓여 악동은 보이지 않는다 쏜살같이 삼층으로 치달아 막 날개쭉지를 펴.. 2022. 3. 15.
세일에서 건진 고흐의 별빛 -- 황동규 방금 세일에서 건진 고흐의 복사화 별 빛나는 하늘 아래 편백나무 길 한가운데 편백나무 두 줄기가 서로 얼싸안고 하나로 붙어 서 있는 밀밭 앞길로 위태한 마차 한 대 굴러오고, 하나는 삽을 메고 하나는 주머니에 두 손 찌른 채 농부 둘이 걸어오고 있다. 하늘 위에 별이라곤 왼편 귀퉁이에 희미한 것 하나만 박혀 있고 (별나라엔들 외로운 별 없으랴) 나머지는 모두 모여 해와 달이 되어 빛나고 있다. 빛나라, 별들이여, 빛나라, 편백나무여, 세상에 빛나지 않는 게 어디 있는가. 있다면, 고흐가 채 다녀가지 않았을 뿐. 농부들을 붙들고 묻는다. '저 별들이 왜 환하게 노래하고 있지요?' '세상에 노래하지 않는 별이 어디 있소?' 빛나라, 보리밭이여, 빛나라, 외로운 별이여, 빛나라, 늘 걷는 길을 걷다 이상한 사.. 2022.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