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104 고호 2 -- 이상희 새벽 세 시 반 꿈의 천창으로 얼핏 지나가는 그가 보인다 여자의 비린 맛도 모르고 찬 커피와 검은 빵을 씹던 사내가 화구를 편다 새벽 세 시 반 잠든 얼굴 위로 가끔 떨어지는 그대 살점 붓을 쥔 채 까무라치는 까무라치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노려보면서 다시 일어나는 그대 촛농처럼 뜨겁게 고여온다 새벽 세 시 반 잠든 몸에서 빠져나와 울고 있을 때. 2022. 3. 16. 고호 1 -- 이상희 푸른 저녁이었지 뜨거운 진흙을 이마에 발랐어 미친 달이 뜨고 수화를 시작했지 바람 속이었어 나무를 불길처럼 말아올리고 우우 쏟아지는 까마귀떼 지평선이 무너졌어 짓물러 터진 영혼 달 같은 광기 하나가 느닷없이 사라졌어. 2022. 3. 16. 죄수들의 보행 -- 이능표 그들 중 몇은 낯익은 얼굴이다. 더러는 고개를 꺾고 있지만 투박한 어깨와 걸음걸이만 보아도 누군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죄수 김갑돌, 박갑순, 김철수, 이영희······ 반가운 얼굴들이다. 새들과 몇 쌍의 금붕어도 있다. 자유롭게, 또는 공기도 없이 살아온 죄. 2022. 3. 16. 보릿꽃 -- 이능표 빈센트 반 고호풍의 여름이 왔으면 좋겠지? 고호풍의 하늘에는 찬밥같은 혁명시 몇 편 묻었으면 좋겠지? 더럭 여름 대신 겨울이 되돌아오고 그래서 더럭 겁이 날 때 시퍼런 보릿단에 묶여 실컷 매나 맞았으면 좋겠지? 거 참 좋겠지? 봄이 오면 그런 생각. 꽃잎도 달지 않고, 울컥울컥 돋아나는 보릿꽃. 2022. 3. 16. 이전 1 2 3 4 5 6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