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104 고호의 의자 -- 이향아 반 고호의 의자는 지겟다리 같다. 그의 몸은 거기에 등짐처럼 실릴 것이다. 고독한 광대뼈 치뜨는 푸른 눈 짧은 머리털 휘어진 나무 토막 같은 파이프를 물고 아를르, 프로방스, 오베르, 생 레미의 정신 병원,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태양이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것을 거기서 볼 것이다. 세상이 열 두 번 변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고호의 의자. 바닥과 벽 사이 의자 하나 빈센트라는 이름이 보일 뿐 텅 빈 하늘과 땅 사이 홀로 지키는, 반 고호의, 지겟다리 같은 믿음직한 머슴 같은 의자 하나. --- 고흐의 예술혼을 그의 의자에 빗대 노래한 시로 흥미롭다. 2022. 3. 16. 측백나무와 별이 있는 길 -- 이향아 프로방스의 측백나무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불기둥 머리채 흔들면서 하늘에 닿고 달도 별도 소용돌이치는 빛의 웅덩이 오월 밤 수풀을 밀밭 향내로 태운다 들끝 오막살이 낡은 창문 낮은 콧노래 길게 흐르고 방울 소리 울리는 흰 말의 수레와 천천히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 밤길은 새벽까지 탈이 없을 것이다. 측백나무 위에 별이 뜨는 길은 어우러져 넘치는 강줄기 같다. 바람도 둥글게 윤무를 춘다. --------------------- 프로방스의 측백나무는 땅에서 솟아오른 검은 불기둥 머리채 흔들면서 하늘에 닿고 달은 달대로 별은 별대로 숙성한 오월 밤 수풀 위에 황금의 밀밭을 일으켜 세운다 들끝 오막살이 사람 사는 창문에서는 보라빛 훈김이 피어오르고 흰 말이 끄는 마차 방울 소리 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을 사람들.. 2022. 3. 16. 정물 -- 고호의 <해바라기> -- 이제하 그대의 눈빛이 2022. 3. 16. 여름 -- 노란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 고호 1889년 -- 이제하 피크닉 배낭에 잔뜩 도구들을 챙겨 넣고서 들로 나갔다. 대형 나일론 망사채로 바람을 걸르고, 대기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땅을 파고, 민주니 공산이니 아이비엠이니 하는 사상들을 우선, 한 구덩이에 쓸어넣고 태워버렸다. 은 청렬하다. 점심은 통멧돼지 구이로 해얀다고 어린 딸은 끝내 보채기 시작했으나 우리는 파종부터 했다.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보다 더 삼엄한, 저 성채를 단숨에 자욱한 가시로 휘덮어 버리는 타조 알만큼 굵디굵은 그런 이상한 선인장들의 씨들을······ 2022. 3. 16. 이전 1 2 3 4 5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