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104 아를르의 병원에 있는 공동침실 -- 밤샘 -- 정진규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에 불을 밝히고 있는 집은 그 집 한 채 뿐이다 혼자서가 아닌 여럿이서 함께 잠들지 못하고 있는 집은 그 집 한 채 뿐이다 곧 당도할 별 하나를 하늘의 별들이 기웃거리고 말을 잃은 사람들이 그저 난로가에 둘러앉아 있을 뿐이다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밤 침대들은 모두 비어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이 누워 있다 침대들은 모두 차 있다 오직 한 개의 침대만이 비어 있다 그들이 잠든 동안에 홀로 떠나 보낼 수 없는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어두운 사람들의 따뜻함! 따뜻하다 할지라도 그런 슬픈 따뜻함을 누가 알겠는가 가끔씩 담배를 피울 뿐이다 밤샘들을 하고 있었다 뜨거운 국을 끓여주고 싶었다 2022. 2. 22. 만개한 편도화(扁桃花) 나뭇가지 -- 개복숭아 -- 정진규 누구나 가장 잘 그리고 싶다 그의 고향 뜨락을 해마다 가득 채우던 만개한 편도화 나뭇가지 누구나 그 향기 가득한 걸 그리고 싶다 누구나 무너짐으로부터 온전하게 일어나 있고 싶다 고향엘 돌아가 있고 싶다 조카들의 방에도 한 폭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서 걸려 있고 싶다 그러나 모를 것이다 무너져 있는 사람은 무너져 있을 때가 오히려 편안하다 떠돌고 있는 사람은 떠돌고 있을 때가 오히려 제 모습이다 만개한 편도화 나뭇가지 내 고향의 뜨락에도 개복숭아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꽃이 더 아름다웠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내게도 더욱 깊은 어둠이 왔다 아침에도 깨어나지 않은 사람 하나가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따라다녔다 2022. 2. 22. 자화상 -- 방화 -- 정진규 그는 언제나 어둠을 잔뜩 꼬나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가 어둠이었다 무너져야 할 것은 그 자신이었다 꼬나보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어둠이었다 불러줘야 하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듣지 못하는 귀는 쓸모가 없었다 울화만 치솟았다 그걸 서른일곱 해 동안 오직 건초더미로만 가지고 갔다 그가 술을 마실 줄 알았다거나 여자를 찾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방화가 편했다 2022. 2. 21. 밤의 카페 -- 별이 된 꿈 -- 정진규 저마다 그의 어둠들에게 독하게 엎지른 술들이 별들로 튀어나와서 뒹굴고 있었다 마을의 우체국장도 마을 사람들도 카페의 주인도 모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늘로 가고 있었다 날개는 달지 않았다 알몸이었다 별이 된 꿈을 꾸고 있었다 비어 있는 술병들이 비어 있는 나무의자들이 슬프게 조금 흔들렸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술잔 하나가 혼자서 굴러 떨어졌다 아침까지 갈지는 의문이었다 모두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2022. 2. 21.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