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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91

이남호 - 평상심의 맑은 정신과 눈. "좀팽이처럼" 평문. 문지. 1988 - 이남호는 김광규의 시가 지닌 장점과, 또 그것이 자칫 한계 내지는 단점으로 변할 수 있음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일상성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그른 모습과 허위를 반성하며 참된 평범성을 견지하려는' 정신을 김광규 시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전의 시집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삶의 원래 모습과 의미에 대하여' 자연에 빗대어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이 시집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발췌135) 일상을 벗어나지 아니하되 늘 일상의 그른 모습과 허위를 반성하며 참된 평범성을 견지하려는 소박하고 맑은 정신을 만난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건전함이란 절대적 가치일 수 있지만 현실속에서의 그것은 진실을 가리는 껍질일 가능성이 많다. 도덕*상식*일상*규범 등도 마찬가.. 2024. 2. 15.
김광규 - 봉순이 엄마 봉순이 엄마 김광규 골목길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먹갈치와 물오징어를 사라고 외치는 봉순이 엄마 생선장수 어미가 창피해서 골목길을 피해다니던 딸을 그녀는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워놓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 온갖 일에 아무런 기대도 품지 않고 별다른 요구도 하지 않고 요란한 투쟁도 벌이지 않고 자반고등어와 이면수를 사라고 외치며 골목길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봉순이 엄마 민주화가 무엇인지 올림픽이 어디서 열리는지 공장이 왜 문을 닫는지 전혀 아랑공없이 한평생 생선을 받아다 팔면서 살아온 그녀는 조합 없는 노동자 구호를 모르는 민중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미더운 이웃 김광규. "좀팽이처럼". 문지. 1988. 52-53 -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식을 기르는 한 서민의 모습을 담아낸 시이다. 단순화일 수도 .. 2024. 2. 15.
김광규 - 나뭇잎 하나 나뭇잎 하나 김광규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김광규. "좀팽이처럼". 문지. 1988. 28-29. - 자연의 순환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과 , 나뭇잎의 운명에서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는 시이다. 2024. 2. 15.
김광규 - 좀팽이처럼 좀팽이처럼 김광규 돈을 몇 푼 찾아가지고 은행을 나섰을 때 거리의 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려놓았다 대출계 응접 코너에 앉아 있던 그 당당한 채무자의 모습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신촌 일대를 지나갈 수 없었다 인조대리석이 반들반들하게 깔린 보도에는 껌자국이 지저분했고 길 밑으로는 전철이 달려갔다 그 아래로 지하수가 흐르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시뻘건 바위의 불길이 타고 있었다 지진이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지 5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의 한 귀퉁이 1,000만 시민이 들끓고 있는 서울의 한 조각 금고 속에 넣을 수 없는 이 땅을 그 부동산업자가 소유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그가 양도하고 저당하고 매매하는 그 땅 위에서 나는 온종일 바둥거리며 일해서 푼돈을 벌고 좀팽이처럼 그것을.. 2024.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