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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나뭇잎 하나

by 길철현 2024. 2. 15.

나뭇잎 하나

                    김광규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김광규. "좀팽이처럼". 문지. 1988. 28-29.

 

- 자연의 순환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과 , 나뭇잎의 운명에서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