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하나
김광규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김광규. "좀팽이처럼". 문지. 1988. 28-29.
- 자연의 순환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과 , 나뭇잎의 운명에서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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