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 하, 추억치고는!
어둠 상자 속 뿌옇게 빛 절은 필름으로 찍히는 돌아오는 길에 쪼그리고 앉았다. 용접 불꽃처럼 산성비, 뺨을 뚫는 길바닥도 잠시 머물면 체온이 고인다고 마음 한끝이 중얼거린다. 헛발질이야, 헛웃음. 무슨 짓을 해도 추억으로 인화되지 않지. 헛, 헛, 헛, 시간이 헛돌고 있다. 헛, 헛, 헛, 우리가 헛놀고 있다. (헛것인 한에서의 '우리'여) (너는 괜찮아? 난, 모르겠어. 이게, 뭔가? 이글거리는, 멋들어진 스러짐이여, 끈질기게......
2023. 4. 24.
황인숙 - 조깅
후,후,후,후! 하,하,하,하! 후,후,후,후! 하,하,하,하! 후,하! 후,하! 후하! 후하! 후하! 후하! 땅바닥이 뛴다, 나무가 뛴다. 햇빛이 뛴다, 버스가 뛴다, 바람이 뛴다. 창문이 뛴다, 비둘기가 뛴다. 머리가 뛴다. 잎 진 나뭇가지 사이 하늘의 환한 맨몸이 뛴다. 허파가 뛴다. 하,후! 하,후! 하후! 하후! 하후! 하후! 뒤꿈치가 들린 것들아! 밤새 새로 반죽된 공기가 뛴다. 내 생의 드문 아침이 뛴다. 독수리 한 마리를 삼킨 것 같다.
2023.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