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9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니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2023. 4. 27. 이영광 - 우물 우물은, 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 우물이 있는 자리 나는 우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2010) 2023. 4. 27. 이영광 - 유령 3 朝刊은 訃音 같다 사람이 자꾸 죽는다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서 죽였을 것이다 사람입니다, 밝히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죽이고 싶었다고…… 죽였을 것이다 죽이고 싶었지만…… 죽였을 것이다 죽이고 싶었는데…… 죽였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을 것처럼 哀悼해야 할 텐데 죽인 자는 여전히 얼굴을 벗지 않고 心臟을 꺼내놓지 않는다 여전히 拉致 中이고 暴行 中이고 鎭壓 中이다 計劃的으로 卽興的으로 合法的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戰鬪的으로 錯亂的으로 窮極的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아, 決死的으로 總體的으로 電擊的으로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죽은 자는 여전히 失踪 中이고 籠城 中이고 投身 中이다 幽靈이 떠다니는 玄關들, 朝刊은 訃音 같다 2023. 4. 24. 김선우 - 나생이 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을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때의 그 '나생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들어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살짝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니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 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니 수런수런 깃 치는 연.. 2023. 4. 24. 이전 1 ··· 52 53 54 55 56 57 58 ··· 103 다음